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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장에선]竹鄕 전남 담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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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장에선]竹鄕 전남 담양

입력
2003.12.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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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는 얽힘 없는 수직으로 서서 빈 세상을 지향한다. 광풍에 꺾일지언정 구차하게 시들지 않고 곧추 서서 겨울을 난다. 그 고고연한 성정에 선인들은 겨울의 군자랍시며 늘 가까이 두려던 것인데…. 비뚤어진 입이지만 바로 말하자면, 사람들이 대숲에 찾아 든 것이지 대가 사람 곁에 다가와 꽃이며 열매로 아양을 떤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해서, 대는 뭇 은사며 문인들이 짝사랑의 세레나데를 읊어대며 지조며 절개의 메타포로 끌어댈 때에도, 보이지 않는 땅 속에서 그 굳은 뿌리를 한(恨)처럼 얽어가며 서민들의 삶을 지탱해 온 것이었다. 즉, 1,000년 역사의 담양 대숲은 관념의 숲이 아니라 '생계의 밭'이었던 셈인데, 그 담양의 대밭이 '나이롱 바구니'의 모진 세월을 버텨내고 다시 흥성해지기 시작했다.전남 담양군의 12개 읍면에 든 마을이 모두 276개다. 이 가운데 70년대 취락마을로 형성된 2곳을 제외하면 그 많은 마을 모두가 넓든 좁든 대밭을 품고 있다. 심고 가꾼 것이 아니라 대부분 저절로 나고 자란 것이라고 했다. "땅이 낮차우면서 사질양토가 좋고, 온난다습함서도 해풍(海風)은 없어야 헝게 '딱 담양' 아니겄소." 대에 미쳐 '죽광(竹狂)선생'으로 불리는 남상관(73·담양읍 가산리)씨는 담양과 대의 연분을 필연적이라고 했다.

주민들과의 인연은 더 특별할 밖에. 대통 노리개를 핥고 빨면서 엄마 젖을 뗐고, 새총이며 칼이며 활이며 도롱테(굴렁쇠)를 댓살로 만들어 굴리며 자랐다. "여나믄 살이면 대개 대(다듬는) 칼을 잡고, 금새 어지간한 대바구니 하나 쯤은 짜내곤 했제." 집안 대밭이 없는 남자들은 댓살 바지게를 지고, 대편으로 엮은 사립짝을 열고 나가 새벽 논물 한 번 둘러본 뒤, 산에 들어 하루고 이틀이고 머물며 대를 베어오곤 했다. 대를 용도에 맞게 날대 씨대 나누어 자르고 쪼개고 깎고 굽히고 구멍 뚫는 일은 주로 남자들 몫이고, 새벽잠 설쳐가며 잇고 엮는 일은 대개 여자들이 해냈다. 집집이 손에 익은 기술들로 만든 바구니며 채반, 채상, 발, 참빗 등을 관방천변 죽물5일장에 이고 나가는 일도 주로 여자들 몫인데, 더러 손이 많은 집에서는 소달구지를 동원하기도 했다. 대가 시들지 않고 사철 푸른 덕에 담양 사람들의 대밭 농사도 계절이 없었다. "그게 돈이 쏠쏠해 고래실 논 서 마지기를 들고 와도 대밭 한 마지기를 안내줬어."

'대밭 여나믄 마지기면 부자 소리 듣던' 그 영원할 것 같던 호시절은 하지만, 70년대 후반 이후 '나이롱(플라스틱) 바구니'와 '중국산 대바구니' 시절을 차례로 겪으며 풀 죽기 시작했고, 질기게 얽혔던 대밭 뿌리들은 더러 포크레인에 패여 나갔다. 그나마 남은 대밭은 오뉴월 한 철 죽순밭으로 방치됐고, 어린 대를 못 보게 된 대밭은, '대숲'으로 남아 늙어갔던 것이다.

군 면적의 19%, 산림면적의 31%가 죽림인 담양이고 보면, 담양 대와 죽공예품의 명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박물관도 짓고 축제도 열었다. 하지만 이효리의 섹시미에 길들여진 세상 눈길이, 흡사 분 단장한 퇴기(退妓)의 처연한 아름다움에 오래 머물 턱이 없던 것이었다.

군은 1994년부터 857㏊에 이르는 국내 최대 담양 죽림을 활용할 방도를 찾기 시작했고, 전남대 등 전문 연구기관에 의뢰해 댓잎의 약리효과를 분석하는 등 다양한 상품화 방안에 눈을 돌렸다. 해서 나온 것이 '대잎차'며 '죽초액(대를 태워 채취한 진액)'이며 '대나무숯'이다. 이른바 대나무 신바이오산업화다.

군은 그 사이 댓잎차와 음료 국수 다식 우동 전병 등 6개의 제조관련 특허를 얻어냈고, 죽엽두부 등 5개는 특허 출원한 상태. 살균효과와 간질환 고혈압 숙취제거 등에 효능이 입증된 죽초액을 활용해 생산한 딸기 쌀 돼지고기 등 농축산물과 비누 등 목욕용품이 이미 시판되고 있고, 참숯보다 정화 탈취 향균기능이 낫다는 대나무숯도 곧 상품화한다는 계획.

지난 달 21일 금성면 원율리에 준공한 (주)대나무 건강나라도 그 가운데 하나다. 민간업자가 군의 댓잎차·음료 생산관련 특허를 사용하는 대신 매출액의 2.5%를 군에 주는 조건으로 티백과 잎차, 댓잎분말 등을 생산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시제품을 우선 담양군청을 비롯한 관내 관공서에 선사, 커피 등 기존의 접대용 차를 모두 댓잎차로 바꿨다고 귀띔했다. 댓잎차의 깊은 향과 은은한 빛깔이 알려지면서 몇몇 대형 유통업체와 이미 납품계약을 맺었거나 상담을 추진중이라고 했다. 일꾼도 주민이고, 댓잎 납품도 주민들의 부업임은 당연지사. 군은 자체적으로 보유한 특허기술들을 보급해 제조공장을 유치해 그 특허사용료로 지속적인 대나무 관련 산업을 키워나간다는 것인데, 이를 통해 대나무의 활용도를 높이고 주민들의 소득도 향상시킨다는 구상이다.

게다가 금성면 금성리 일원 28만평의 부지에 대나무 생태공원을 조성키로 하고, 10년 장기 계획으로 휴양시설과 체험장, 대나무 먹거리촌 등을 꾸며 나가기로 했다.

다시 일기 시작한 담양의 '댓바람'은 거세다. 최근 수년 새 댓잎을 활용한 기능성 온천이 섰고, 대숯 사우나며 산소방을 갖춘 리조트가 만들어졌고, 죽염을 이용한 전통음식점이며 심지어 대나무 석쇠를 이용한 고깃집까지 생겨났다. 민선군수의 열의보다 앞서 주민들이 '죽향 담양'의 종합 관광 컨텐츠를 채워 나가고 있는 것이다.

흉년 들면 죽순으로 구황하고 댓살로 온갖 생활용품을 만들어 쓰다가도 분노하면 죽창을 깎았고, 빈 공명의 피리를 만들기도 했다. 대와 함께 부대끼다가 왕대 만장에 이끌려 땅으로 들었던 이들이니, 하자고 들면 대나무 하나로 못할 일이 없는 담양 주민들이다. 그들이 다시 대숲으로 달려들기 시작한 것이니, 담양의 대 숲은 다시 밭으로, 옛적 '생금(生金)밭'으로 불리던 그 시절의 밭으로 거듭나는 것도 시간 문제일 것이다.

/담양=글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사진 손용석기자

● "대나무골 테마공원" 신복진 대표

사진 찍는 신복진(65)씨가 금성면 봉서리 고지산 기슭 처가 동네에다 대숲을 가꾼 게 그럭저럭 30여년 세월이다.

광주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여투어 둔 돈으로 한 평 두 평 땅을 사 모았고, 주말이면 찾아 들어 잡목을 걷고 대를 심고 길을 냈다. "그냥 대나무가 좋아서"였다. 그게 어느 새 우람하게 자라 3만여 평의 하늘을 가리고 섰다.

수년 전부터 적잖은 영화와 드라마, CF의 촬영장소로 활용되면서 그의 '대나무골 테마공원'은 담양의 명물이 됐다. 이제 담양을 찾아오는 이들 치고 그의 공원을 그냥 지나치는 이는 드물다. 장대빗줄기 같은 장대들의 숲과, 한 낮에도 어둑시근한 오솔길이 있을 뿐인데도 그렇다. 바람이라도 일면 하늘은 신기(神氣)어린 숲과 함께 서걱이며 흔들리고, 어지러운 마음은 금새 오그라든다. 가끔은 생계의 대밭이 아니라 완상(玩賞)하는 대숲도 좋다.

그는 지난해부터 입장료를 받기 시작했는데, 그게 장삿속인지 뭔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귀담아 들을 만한 것이었다. "외지인들의 발길이 잦아지면서 숲이 쉬이 망가지는 겁니다. 돈을 내고 보라고 했더니 그 뒤로는 귀한 것을 알겠던지 훼손하는 일이 적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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