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를 상대한 노점상들의 투쟁은 그 결말이 뻔하다. 노점상들이 아무리 버텨도 철거 용역업체 직원과 경찰, 중장비 앞에선 속절없이 무너지고 만다. 청계천 주변의 700여 노점상들도 그렇게 생존의 터전에서 밀려났다. 단속이 뜸하면 다시 좌판을 벌일 수 있겠지만 서울시가 작정만 하면 철거작업은 군사작전처럼 이뤄지기에 한 곳에 터 잡기는 틀렸다. 서울시는 도시 미관, 보행자 편의를 이유로 철거에 나서지만 노점상들에겐 생사가 걸린 문제다. 목숨을 걸고 생존의 터전을 지키려는 것도 좁은 좌판에 가족의 생활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시장은 그 나라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특히 재래시장은 있는 그대로의 생활과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그 중에서도 벼룩시장은 가장 가까이 그 나라, 그 도시와 사람의 문화와 체취를 호흡할 수 있다. 그래서 파리의 책 노점상 같은 유럽 도시의 벼룩시장들, 태국의 야시장, 싱가포르의 노점상 등 유서 깊은 도시의 노점상은 그 도시를 대표하는 문화상품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고 있다. 보행권 침해문제나 위생문제가 없을까마는 적절한 방법을 통해 노점상이 도시의 흉물이 되지 않도록 관리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 청계천변의 대표적 재래시장이 자리잡은 황학동은 수많은 사람들이 생업을 영위하는 시장이기도 하지만 귀중한 문화의 보고다. 황학동시장은 6·25동란 이후 고물상과 미군 물품을 중심으로 노점이 형성된 뒤 우리나라 최대의 중고품·골동품시장으로 자리잡았다. 청계천과 함께 가난의 상징이자 고달픈 삶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장소였기에 문학의 소재가 되었고, 중년을 넘긴 사람들에겐 고단한 삶의 현장으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세상은 달라졌지만 황학동 일대는 여전히 '없는 것이 없는' 세계적인 벼룩시장의 명성을 지켜 왔다.
■ 청계천 복원사업이 계획대로 마무리되면 청계천 주변은 현대적인 시설이 들어서 편리하고 쾌적한 거리로 변할 것이다. 그러나 가장 한국적이고 서울의 향기를 풍기는 문화도 그대로 남아 있을지 의문이다. 서울의 옛 모습을 되살리고 물과 나무와 땅이 어우러진 도심의 자연공간을 만들겠다는 청계천 복원 취지에 왜 시민들이 사랑하고 아끼는 벼룩시장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지 알 수 없다. "노점상은 거리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들이다. 노점상 없는 서울거리는 똑같이 멋대가리 없이 생긴 건물들뿐이다." 어느 외국인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노점상은 도시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을 가치가 충분하다.
/방민준 논설위원 mjb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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