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 인물에게 바늘 하나를 새겨준 적이 있었다. 그는 연약했고 강해지고 싶어했다. 나는 그의 가슴에 바늘을 문신해 주었다. 바늘은 가늘면서도 강하고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그의 가슴에 새겨진 바늘은 우주를 빨아들이는 틈새였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고통을 참아내는 자만이 강인해질 수 있다고, 육신의 고통을 참아내고 완성되는 문신은 강인해지기 위한 제의에 다름 아니라고.뉴스에 등장하는 조폭들은 하나같이 옷이 걷어 올려지고 등짝이나 팔뚝에 그려진 문신으로 얼굴을 대신한다. 그 얼굴은 누군가에게 겁을 주기 위해 잔뜩 힘을 주고 있지만 스스로 두려움에 휩싸인 비굴함은 감출 수 없다. 어떤 이들은 병역기피를 위해 문신을 한다. 그것은 연약함에 대한 굴복이고 회피다. 그들이 새긴 호랑이나 용 따위는 어떤 의미도 어떤 강인함도 갖고 있지 못하다. 그것은 단지 자해공갈단이나 협잡꾼의 추잡한 물증에 불과하다.
문신을 예술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있었다. 그녀는 간판을 걸고 영혼을 다해 문신을 해주었다. 지하에서 은밀하게 행해지던 문신을 지상으로 올려놓은 것이다. 그녀에게 문신은 돈벌이가 아니라 영혼이었고 예술이었다. 그녀에게 영혼과 예술을 담아간 사람들 중에 병역기피를 위해 찾아온 사람이 있었던 것이 문제였다. 그녀는 불구속 입건됐고 부정의료업자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눈썹 등의 영구화장문신이 위생상의 문제로 불법이라는 판결이 난 이후 문신은 의사만이 할 수 있다는 법 조항 때문이었다.
그녀의 소식을 접하면서 내 머리 속에는 다양성이나 편견과 같은 사회적 문제의식에 앞서 시커먼 눈썹의 우스꽝스러운 얼굴이 먼저 그려졌다. 나는 결국 소설 속 인물에게 강인한 바늘을 새겨준 것이 아니라 불법 시술을 해 준 셈인가. 그렇다면 나 또한 부정의료업자인가?
천 운 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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