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의 총학생회장 선거가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 올해 총학생회 선거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단연 '비운동권'의 약진과 '새 학생운동조직'의 대두. 특히 비운동권 후보들이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중심대학에서 잇따라 당선되고, 한총련 후보들 사이에서도 '한총련 해체' 공약이 거론되자 일각에선 '운동권 몰락'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비운동권 약진, 한총련의 고전
인터넷 대학뉴스 매체인 '유뉴스'와 경찰청 등에 따르면, 전국 207개 4년제 대학중 3일까지 투표가 끝난 146개(71%) 대학 가운데 비운동권 후보가 100곳(68%), 한총련 계열이 41곳(28%), 좌파 계열이 5곳(3%)에서 당선됐다. 비운동권 후보가 전국 176개 대학중 123곳(69.8%)에서 당선됐던 지난해와 비슷한 결과가 나와 비운동권의 강세가 되풀이됐다. 특히 한총련 중심대학이었던 한양대 홍익대 숭실대 등에서 '한총련 탈퇴, 해체' 공약을 내건 비운동권이 당선됐다. 이 같은 현상은 지방으로 내려갈수록 더욱 두드러졌다. 학생운동의 '메카'인 전남·광주 지역에서는 광주대 호남대에서 비운동권이 당선됐고, 재투표를 끝낸 전남대 역시 비운동권 후보의 우세가 점쳐지고 있다.
새로운 학생운동연대체의 등장
비운동권의 강세는 분명 한총련과 학생운동의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한편에선 비운동권의 약진이 학생운동 전체의 다양화와 대중화를 가속화할 것이란 조심스러운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한총련 대안조직으로 부상한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50개대 소속)'은 비운동권으로 분류됐지만 중심세력은 비운동권과 운동권의 통합을 내건 기존 한총련 계열 후보들로 이뤄져 있다. '운동권, 비운동권을 포괄하되 생활·학문·투쟁을 실천하는 열린 학생운동조직을 건설하겠다'(덕성여대)는 공약에서 드러나듯 최소한 사회변혁세력으로서 학생운동의 정체성을 잃지 않겠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한양대 등이 주축이 돼 보다 '소프트'한 학생운동을 표방하고 있는 학생연대조직인 '학생연대21'(20여개대 소속) 역시 학내이슈를 우선으로 하되 NGO활동, 반전·통일운동 등을 통해 학생들의 '사회참여'를 적극적으로 이끌어낸다는 계획이다.
올해 총학생회 선거에서 적지않은 성과를 거둔 비운동권 학생연대조직들은 모두 내년부터 본격적인 조직정비와 세 확산에 나설 예정이어서 운동권과 비운동권을 망라한 새 학생운동조직건설 논의는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 연세춘추 오윤석 편집국장은 "지금의 한총련은 학생들의 다양한 목소리와 변화된 욕구를 담아내기에는 지나치게 거대화한 조직"이라며 "앞으로는 풀뿌리 학생자치에 기반한 소규모 학생운동단체들간의 느슨한 연대가 더욱 힘을 얻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총련 해체? 고민에 빠진 한총련
비운동권의 대약진에도 불구하고 아직 한총련 해체, 운동권의 위기를 단정짓기는 이르다. 연세대 서강대 경희대 등 주요 대학에서는 한총련 등 운동권 후보가 당선됐고, 좌파 계열 또한 지난해 못지않은 성과를 거둔 것으로 분석됐다. 하지만 기존 학생회에 대한 불만이 비운동권의 약진이라는 결과로 나타난 만큼 '한총련 계승' '한총련 확대강화' 등으로 나뉘어진 한총련 해체 논의는 새로운 학생운동의 모색과 맞물려 급속히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한총련 의장을 배출한 연세대의 배진우 총학생회 당선자는 최근 '유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한총련'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운동권과 비운동권이 함께하는 새로운 학생운동을 이야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동국대 강종구 교수는 "1990년대 중반 이후 학생운동의 위기는 변화하는 학생들의 다양한 목소리와 요구를 담아내지 못한 한총련 자체의 문제도 있지만 수많은 수배자를 양산하며 합법화 논의조차 틀어막은 우리 사회에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며 "올해 초 서울대 비운동권 총학생회가 '이라크전 반대 동맹휴업'을 벌이는 등 운동권 못지않은 역량을 보여준 것처럼 지금은 비운동권, 운동권 같은 기계적 분류에 얽매이지 말고 보다 유연한 자세로 학생운동의 변화를 지켜봐야 할 때"라고 말했다.
/김명수기자 lece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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