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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테헤란에서 롤리타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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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테헤란에서 롤리타를 읽다

입력
2003.1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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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자르 나피시 지음 이소영·정정호 옮김 한숲·1만 8,000원

V.나보코프의 소설 '롤리타'는 20세기 최고의 문제작으로 1955년 발간된 이래 자유를 건국의 이념으로 삼은 미국에서조차 출판 금지를 당했다. '중년의 사내가 후처의 딸인 롤리타의 아름다움에 이끌려 아내를 자동차 사고로 죽게 한다. 그리고 열 두 살 어린 소녀 롤리타와 사랑의 도피를 한다'는 게 줄거리다.

이런 '롤리타'를 이란의 한 복판인 수도 테헤란에서 읽는다는 게 가능할까? 이란이 어떠한 나라인가. 1979년 '반미의 화신'인 호메이니가 친 서방파인 팔레비 국왕을 몰아내고 이슬람 혁명을 성공시킨 곳이다. 이후 서양문물과 예술은 이슬람 세계의 정신과 전통을 파괴하는 아편과도 같은 존재로 낙인 찍혔다. 이런 상황에서 롤리타를 읽을 수 있을까. 대답은 뻔하다. '롤리타'는 이란에서 아직까지도 금서다.

그러나 금서라는 딱지는 때론 '추천도서'보다 훨씬 더 큰 매력을 발한다. 테헤란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다가 차도르 쓰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쫓겨난 나피시 교수(사진)는 비밀 독서클럽을 결성한다. 95년 가을 대학교수직을 사임하면서 다양한 출신과 경력을 가진 젊은 여성 7명과 함께 금지된 소설을 읽고 토론한다. 종교와 권력에 맹종하는 이란에서 그녀들의 모험은 자신들의 마음속에 깃들어 있는 상실감과 두려움, 자괴감을 넘어 자의식의 출구를 찾기 위해서였다. 2년 간의 모임을 통해 나피시 교수를 포함한 참가자들은 끊임없이 사적 이야기를 나눴다. 모임이 열린 나피시 교수의 거실은 폭력적 현실이 일시 정지된 마법의 공간이었던 셈이다.

V.나보코프의 '롤리타'를 비롯해 '위대한 개츠비', 헨리 제임스의 '데이지밀러', '제인 오스틴'을 차례로 읽으며 나피시 교수는 이란이 겪어온 질곡의 세월을 함께 독해한다. 그는 테헤란에서 '롤리타'를 읽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속삭인다. "모든 위대한 예술 작품은 찬양이고 그것은 배신, 공포, 삶의 배반 행위에 대항하는 불복종 행위라고 나는 장담한다. 형식의 완벽함과 아름다움은 주제의 추악함과 비열함에 반항한다. 이렇기 때문에 어리고 천박하며 시적이고 도전적인 고아가 된 주인공 롤리타로 인해 우리의 가슴이 무너지도록 아플지라도 우리는 욕심스럽게 '롤리타'를 읽는 것이다."

저자의 고백처럼 금지된 소설 읽기는 혁명 이후 강제된 이념, 억압된 자유, 그 속에서 여성이란 존재로서 살아야 했던 시간에 대한 복기(復棋)다. 예를 들자면 '위대한 개츠비'를 읽으며 나피시 교수는 집단적으로 과거의 망령에 사로잡힌 이란 사회의 모습을 떠올리는 식이다. 이란 혁명기에 여성으로서 서구문학을 가르쳤던 저자의 18년 세월이 고스란히 담긴 회고록으로 사회와 문학에 대한 깊은 통찰력이 빛난다.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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