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이 날 몰라 보더라니까."서울 예술의전당 내 서울예술단 연습실에서 만난 뮤지컬 배우 송용태(52)씨는 적잖이 섭섭한 표정이다. 송씨가 스크루지 역을 맡은 뮤지컬 '크리스마스 캐롤'(12∼28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는 10명의 아역이 나오긴 나온다. 연습을 지켜보는 어머니들은 아이에게 신경을 쓰느라 은발로 염색한 주인공에게는 별로 눈길을 주지 않는 모양이다.
하지만 아버지들이었다면 얘기가 좀 달라졌을 것이다. 중장년층 남성 중에는 사극 '태조 왕건'과 '무인시대'에서 각각 개국공신 홍유 역과 대장군 이소응 역을 맡은 송씨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이많다. 온화하지만 당당한 연기는 확실히 남성에게 어필한다.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로렌스 신부 역을 맡았고, 영화 '실미도'에서는 공군 소장 역을 맡아 카메오로 출연하는 등 올해 출연한 작품만 봐도 그렇다. "원래 꿈은 마도로스였어요." 퍽 어울렸을 듯하다. 그런데 마도로스가 되지 못한 이유가 엉뚱하다. "제대 후 강령탈춤 선생님들에게 잡혔죠. 꿈은 망그러지고…(웃음)."
1969년부터 소극장에서 연극을 했는데 우리 몸짓을 필요로 하는 작품이 많아 배우기 시작한 탈춤이다. 군에서도 총을 들고 하는 말뚝이 춤을 가르쳤다.
취미 정도가 아니다. "지난해 2월1일자로 중요무형문화재 제34호 강령탈춤 기능보유자(인간문화재)로 지정됐습니다." 그만큼 철저한 프로다. "머리 색깔? 11시간 동안 탈색 7번, 염색 3번 했죠." 연기는 외형적인 것에서 출발한다는 코프랑의 이론을 거론한다.
그렇다고 내면 연기를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니다. "찰스 디킨스의 원작 소설은 우리나라의 'IMF 시절'처럼 각박했던 1840년대의 영국 사회를 그렸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스크루지입니다. 양면성이 있지요. 스크루지가 수전노가 된 건 어렸을 때 가정환경에서 상처를 받아 에고이즘에 빠진 것이지요. 크리스마스 이브에 과거, 현재, 미래의 유령들을 만나 상실된 인간성을 회복하는 게 주제입니다." 그의 스크루지는 전반부에서는 차갑고 참 행복을 깨닫는 후반부에서는 따뜻하다.
올해로 무대생활 30년. "한국 뮤지컬 1세대로는 '살짜기 옵서예'를 했던 최창권 선생을 꼽을 수 있고, 또 신구 선배, 패티 킴, 돌아가신 김희조 선생도 뮤지컬을 한 적이 있고…." 그는 남경읍, 남경주 형제보다 조금 먼저 뮤지컬을 시작한 2세대라고 한다. 하지만 제대로 단계를 거친 세대 중 현재 맏형이라는 자부심이 강하다.
"예전에는 관변 단체에 있는 게 정규코스였어요. 예그린, 서울시립 가무악단을 거쳐 2000년까지 서울예술단에서 뮤지컬 감독을 맡은 후 프리를 선언했습니다. 뮤지컬상도 받을 상은 다 받았는데 신인상을 못 받은 게 아쉽네요."
'바담바담', '환타스틱스', '지붕 위의 바이올린', '킹 앤 아이' 등 그가 무대에 섰던 작품은 그 자체가 한국 뮤지컬의 역사다. "솔직히 이제는 무대에 서기가 두려워요. 조바심도 생기고 나이를 먹어가는구나 하는 느낌도 들어서요." 그래도 아직은 무대에서 내려올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역들의 맑은 눈망울을 보면 섬뜩합니다. 작은 실수에도 상처 받기 쉬운 영혼들이죠. 더 열심히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02)523―0986
/글·사진=홍석우기자 museho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