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도 여느 상품과 마찬가지로 엄연히 오리지널이 있고, 겉 모양새는 비슷해 보여도 속에 품고 있는 텍스트의 질에서 반드시 우열이 갈리며, 저자의 지명도에 따라 권위가 있고 없음이 결정되기도 하고, 출판사나 편집자의 역량에 따라 완성도의 높고 낮음이 평가되기도 한다.더욱이 같은 분야를 다룬 여러 권의 책들 중에는 반드시 눈 밝은 독자들에게 '메이저'로 인정 받는 책이 한두 권으로 압축되게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1970년에 출간되어 지금까지 세월을 거듭해 읽히는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야말로 '아메리카 인디언 역사'라는 분야에서 단연 원조 격이라 할 수 있고, 풍부한 1차 사료에 의거한 기록문학의 걸작으로 이미 수많은 독자들에게 인정을 받은 터이다. 그리하여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인디언 역사서라는 권위를 부여받게 된 것이다.
이 책은 1492년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400년간 침략자인 백인이 원주민인 인디언에 가했던 무참한 학살에 대한 기록이자 고발로서, 지금껏 알려진 미국의 프런티어 정신, 즉 서부 개척의 역사가 다름 아닌 '인디언 멸망사'였음을 인디언 인터뷰와 재판기록, 조약회담 기록, 회의록 등을 인용하고 재구성해 생생하게 보여준다.
나바호·수우·샤이엔·크로우·네즈페르세·아파치·유트라는 이름의 종족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이 지구상에서 사라졌는지, 제로니모·마누엘리토·붉은구름·검은주전자·앉은소·매부리코·작은까마귀 등 전설적인 인디언 영웅들이 어떻게 최후를 맞았는지 이 책은 낱낱이 기록하고 있다.
오글라라 테톤족의 추장 붉은구름의 말은 서부 개척이라는 미명 아래 저질러진 백인들의 잔인한 약탈상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백인은 수많은 약속을 했다. 그러나 지킨 것은 단 하나다. 우리 땅을 먹는다고 약속했고, 우리의 땅을 먹었다."
운디드니에서 미군의 마지막 광란의 학살이 끝나자 눈보라가 몰아치기 시작했고, 추장인 큰발과 그의 부족민들의 주검은 추위에 얼어붙어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지구상의 한 종족이 사라져가던 학살의 현장은 끔찍하고 처참했으며, 이 모습을 전한 동족의 말은 그렇게 슬플 수가 없었다. "…높은 언덕에 올라 돌아보니 학살당한 여인네들과 아이들의 시체가 굽이도는 계곡을 따라 겹겹이 쌓이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게 보인다. 나는 또 한 가지가 그 피 묻은 진흙 속에 죽어서 눈보라 속에 묻혀 있는 걸 본다. 한 민족의 꿈이 거기 죽어 있다."
/조윤형·열화당 편집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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