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측근비리 특검법이 국회의 재의결로 확정된 것은 정권에 대한 국회 권력의 승리이자 야당 의지의 관철이다. 야당의 힘이 한껏 과시된 반면 대통령의 입지는 크게 위축됐다. 야당은 개헌이나 대통령 탄핵도 가능한 물리력을 갖고 있음을 실증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정치권력의 이러한 실상을 깊이 깨달아야 함은 물론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야당이 가져야 할 책임의식 또한 적지 않게 부각되고 있다.제1당인 한나라당이 특히 그렇다. 대통령의 잘못된 결정을 견제하고 시정하는 야당의 역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미덥지 못한 구석이 남는 것이 사실이다. 이번 재의결의 성공은 최병렬 대표의 단식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해야겠지만 지난 10일 간의 단식은 당초의 명분을 옹색하게 만들었다. 국정위기에 경종을 울리고 대통령을 정상화시키겠다던 거창한 결의가 결국 재의결의 성사를 의도한 데 불과하다는 평가를 면치 못한다.
최 대표의 단식은 투쟁 일변도, 그것도 합리와는 거리가 먼 강경방식의 극단이었다. 여론의 역풍을 무릅쓴 이런 방식이 이번에 통했다 해서 앞으로도 오만한 자세로 일관할 개연성이 없지 않다. 최 대표는 단식을 중단하면서 "노 대통령이 국민의 뜻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국정혁신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그러나 차제에 한나라당이 살펴야 할 국민의 뜻도 만만치 않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한나라당이 대통령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었지만 국회를 유기한 책임에서는 벗어날 수 없다. 국정과 국민을 담보로 한 전투에서 이겼을 뿐, 이것으로 제 역할을 제대로 했다고 할 수는 없다. 대선자금의 오점을 안고 있는 한나라당은 총선 경쟁을 앞두고 특검이 절실했던 처지다. 그러나 총선에서 더 중요한 것은 제1당다운 책임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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