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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위의 이야기/종이 한 장이 우리에게 오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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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위의 이야기/종이 한 장이 우리에게 오기까지

입력
2003.1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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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집에 제법 규모가 큰 닥나무 숲이 있었다. 늦은 가을이면 조꾼(종이꾼)이 작은 나귀가 끄는 수레를 몰고 와서 닥나무를 베어갔다. 할아버지는 그 조꾼에게 점심 한 상을 잘 차려 대접하게 한다.그리고 잊을 만하면 두루마리처럼 둘둘 만 창호지 한 뭉치를 가져왔다. 이 때도 조꾼에게 점심 한 상을 잘 차려 대접하게 하고, 가까운 대소가에 몇 장씩 선물로 보낸다.

명절을 앞두고 볕 좋고 따뜻한 날, 집안의 모든 문들을 새로 바를 때 우리는 먼저 문에 발랐던 낡은 창호지를 한 장 한 장 찢어지지 않도록 잘 챙긴다. 어린 시절 닥나무 숲까지 있었는데도 우리는 단 한 번도 새 창호지로 연을 만들어 본 적이 없다. 아무리 종이가 흔하다고 한들 그건 동네에서 욕을 먹는 짓이었다.

어제 아이들이 쓸 데 없는 것까지 줄줄이 인쇄해 대며 종이를 너무 함부로 버리기에 그 얘기를 하며 야단을 치다가 갑자기 닥나무 숲 생각이 나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닥나무야 지금도 조꾼을 기다리지. 그러나 그 숲에 다시 올 조꾼이 있으려나 모르겠다. 세월에 마커 그렇게 변해가는 걸…"

아버지의 목소리 또한 쓸쓸했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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