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배신인가, 웃음인가.옛날 옛적 클린트 이스트우드라는 영웅이 있었다. 판초를 입고 늘 시가를 물고 다니는 이 과묵한 영웅은 서부시대가 배경인 ‘황야의 무법자’란 영화에서 한 줌의 달러를 더 벌기 위해 혈안인 무법자 총잡이들을 상대해 그나마 상대적으로 착한 무적의 총잡이를 연기해 인기를 끌었다.
그 뒤 그는 매그넘 포스 권총을 들고 판사의 명령에는 아랑곳 없이 자신이 용서할 수 없는 악질 범인을 끝까지 따라가 응징하는 ‘더티 해리’의 해리 캘라한 형사 역으로 인기를 끌었다. 그렇게 강력한 남성 영웅인줄 알았던 그가 어느 순간 ‘90년대 이후의 존 포드’란 칭송을 듣는 명감독이 됐다.
아카데미를 수상한 서부극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 그는 사람 한 명 죽이기에도 식은 땀을 줄줄 흘리는 늙고 쇠약한 총잡이를 연기하며 그때까지 서부 영화가 담아낸 권선징악과 영웅의 신화는 다 거짓임을 원숙한 노인 감독의 시선으로 발가벗겨 보였다.
이스트우드의 신작 ‘미스틱 리버’는 보스톤을 무대로 어릴 적 불알 친구였던 세 남자가 어른이 되어 원치 않는 복수극에 서로 휘말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때 무구한 마음을 나눴던 사이였으나 이제 서로 다른 입장에 처해 서로를 해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처한 남자들의 얘기이자 그런 그들을 지켜보는 그들의 아내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스트우드의 연출은 죄의식과 구원이라는 어두운 주제를 고대의 비극을 보는 것 같은 장엄한 톤으로 그려내는 가운데 자기 힘으로 운명을 통제하지 못하는 보통 사람들의 내면을 섬뜩하게 묘사한다. 요즘 미국 영화에선 흔히 보기 힘든 대중 영화의 깊이를 지니고 있는 ‘미스틱 리버’는 영화를 많이 찍은 감독이 잘 찍을 확률이 높다는 인생의 진리, 그러나 우리 주변에선 찾아보기 힘든 진리를 증명하고 있다.
몰락한 홍콩 영화계가 드물게 내놓은 흥행작 ‘무간도 2_혼돈의 시대’ 는 우리나라에서도 꽤 인기를 끌었던 ‘무간도’의 속편이다. 1편에서 주인공이 죽었으므로 이 속편은 1편 이전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이야기를 시작한다. 1편보다 더 많은 등장인물이 나오고 더 센 허장성세를 부리며 처음부터 끝까지 ‘폼생폼사’로 일관하지만 뜻밖에도 홍콩판 ‘대부’라 부를 만한 매력을 품고 있다.
인생은 배신이라는 것, ‘넘버 3’에서 조필(송강호)이 울부짖었던 그 인생의 실상이 다양한 등장 인물들의 삶의 궤적을 통해 처절하게 부각된다. 누아르 풍의 스타일로 파멸을 향해 치닫는 가운데 자기만의 윤리는 포기하려 하지 않는 인간들의 영웅적 노력이 만만치 않은 호소력으로 다가온다.
올해 칸 영화제 출품작이었던 클로드 밀러의 ‘우리의 릴리’는 체홉의 소설에서 영감을 얻은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다고 하지만, 체홉 운운하는 것이 실례로 보이는 영화다.
프랑스의 중견 감독 클로드 밀러조차도 소소한 이야기를 소소하게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다소 징징거리며 치장한다. 그것이 제 3자에게는 전혀 마음에 다가오지 않으니 이것 역시 일부 프랑스 예술 영화의 자기 도취를 반영하는 영화라고 해야 할 것이다.
윤제균의 ‘낭만자객’은 이 시대의 영리한 대중 영화감독이 만든 더 강도가 세고, 엽기적인 영화라고 하는데 인간의 온갖 분비물을 먹는 장면이 들어 있다. 우리 함께 웃다 죽어도 좋다고 공모하는 이 시대 흥행 영화의 최전선에 동참하고 싶은 분들은 서두르시기 바란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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