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3월 8일. 저는 그 날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피아노 위에 놓여있는, 수정이가 선물해 준 인형이 마지막 유품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인형을 볼 때마다 수정이와의 추억에 늘 가슴 한 편이 쓰라리게 저려옵니다.설레임으로 가득했던 스무 살 나이. 그 친구는 교통사고로 뇌사 상태에 빠졌습니다. 가망이 없다는 말을 듣고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하늘에 대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하느님 정말 이럴 수 있냐고. 이렇게 착한 애를, 이렇게 착한 애를 왜 이렇게 일찍 데려가냐고.
음악을 했던 나와 수정이는 통하는 게 많아 금세 친해졌습니다. 둘 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 예능활동을 하고 있어 서로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둘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무료로 가르쳐주는 예능학교를 만들자고 약속했건만 그 애는 그렇게 가버렸습니다. '스무 살까지만 살고 싶어요'라는 책을 읽으며 불쌍하다고 눈물 흘리던 그 애는 정작 자기도 그렇게 스무 살까지만 살고 가버렸습니다.
수정아. 너와의 추억 떠올리며 그리워한 게 벌써 11년이란 세월이 흘렀구나. 지금도 너무나 네가 보고 싶은 건, 넌 나의 가장 소중한 친구였기 때문이야. 형제 자매도 없이, 형편이 어려워 음대 진학의 꿈도 접고 힘들어 할 때 넌 나에게 좋은 말과 밝은 웃음으로 큰 힘이 되어준 고마운 친구였지. 근데 너에게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그렇게 가버려서 얼마나 속상한 줄 아니. 우리처럼 어렵게 공부하는 아이들을 위해 나중에 커서 좋은 일 하자던 약속도 안 지키고 그렇게 쉽게 가버리니.
수정아. 난 자주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단다. 그럼 넌 항상 변하지 않는 밝은 미소로 나를 내려다보곤 하지. 아무 말 하지 않아도, 그 미소만 보아도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 그래. 우리의 약속 나 혼자라도 이루도록 노력할게.
네가 없어 외롭고 힘에 부쳐도 정말 많이 노력할게. 혹시나 나약하거나 나태해지는 내 모습을 보거든 꼭 힘을 줘. 너를 생각하며 열심히, 정말 열심히 살게.
수정아. 며칠 전 꿈에서 네가 보여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어. 오늘도 꿈에서나마 못 다한 얘기 나누도록 하자. 수정아. 정말 보고 싶다.
/오예리·충남 부여군 부여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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