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메아리]파병, 뭐가 그리 급한가

입력
2003.12.05 00:00
0 0

국무총리 주재로 정부가 이라크 교민 안전문제를 논의한 2일, 국회 현지조사단은 이라크 치안에 별 문제가 없으니 파병을 서두르자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라크 뿐 아니라 전 중동지역 근로자들의 철수까지 논의될 만큼 교민안전이 긴박한 상황인데, 현지조사를 다녀온 국회의원들은 딴 소리다. 여기에 화답하듯 노무현 대통령은 3일 지체 없이 파병동의안을 국회에 상정시키겠다고 말했다. 안방에서 나오는 말과 건넌방에서 들리는 말이 이렇게 다르니, 대체 어느 말에 귀 기울여야 하나.국회 현지조사단의 결론을 요약하면 "일부 지역의 치안이 불안한 것은 사실이지만 북부와 남부지역 민생치안은 안정되어 가고 있다. 그러니 일정지역을 맡아 치안유지와 의료 및 재건지원을 임무로 하는 독립 혼성부대를 되도록 빨리 보내는 게 좋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우선 치안문제부터 눈을 크게 뜨고 들여다볼 일이다.

조사단은 인접국 쿠웨이트를 거쳐 서희·제마부대 소속 특전단 요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육로로 이라크에 들어갔다. 바그다드 입성 때는 미군 장갑차 3대의 엄호를 받았다. 그러고도 가장 안전하다는 그린 존 지역에 있는 호텔에 투숙 중 위층에 로켓포탄이 날아드는 아찔한 순간을 맞았다.

송영길 의원이 조사활동 중에 쓴 일기에 따르면 현지인들은 이구동성으로 치안공백 상태를 입에 담는다고 한다. 우리 공관과 기업체 직원 면담 때 6명 중 4명이 최근 크고 작은 민생범죄를 당했다고 밝혔으며, 파병이 불리하다는 현지 업체의 건의도 있었다고 썼다. "우리는 외국 군대를 반대한다. 다국적군도 환영 받지 못할 것이다." 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IGC) 하킴 의장이 조사단에게 한 말도 일기에 적혀 있다. 이런 사정인데 파병을 서둘러야 하고, 가장 위험하다는 모술의 치안이 안정되고 있다니….

10월 말부터 열흘동안 활동한 정부 2차 현지조사단은 치안이 '매우 불안정한 상태'라는 결론을 발표한 바 있다. 정부 조사단은 이라크 지도층과 지식인 등 40여명의 유력인사 면접조사 결과, 이라크 국민들이 파병보다는 재건지원을 요구하고 있으며, '미군의 친구는 우리의 적'이란 말로 한국군의 파병을 경계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외국인들의 견해도 다를 바 없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 국제연구소가 최근 이라크인 3,2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79%가 미군과 영국군 등으로 구성된 연합군을 신뢰하지 않으며, 미군이 이끄는 임시행정처와 그 영향 아래 있는 이라크 정당들에 대한 불신도 높다. 영국 신문 파이낸셜 타임스의 현지르포 기사에는 "잠들었던 이라크 인들의 지하드(성전) 정신을 부시와 블레어가 일깨워주었다"는 이라크인의 코멘트가 보도되었다.

일정지역을 맡아 치안유지와 재건을 병행하자는 것도 무책임한 제안이다. 치안은 절대 우리가 떠맡을 일이 아니다. 치안이란 현지사정을 잘 아는 그 나라 경찰 소임이지, 외국 군대가 맡을 수는 없다. 현지인의 불법행위나 질서교란 행위를 제지하고 단속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마찰이 일어나게 되고, 그게 커져 충돌이 된다. 그렇게 되면 한국군도 미군과 똑 같은 점령군으로 인식될 것이다. 서희부대와 제마부대가 쌓아놓았다는 좋은 이미지는 하루 아침에 물거품이 된다.

되도록 빨리 파병하자는 국회 조사단 제안과 파병동의안을 빨리 상정하겠다는 대통령 발언도 국민을 불안하게 한다. 미국 회사 하청을 받아 공사장으로 가던 한국인들이 백주대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 총격을 당했고, 주민들의 적대행위가 두려워 현지 한국군 부대가 영외활동을 중지하고 있다. 갖은 위협과 협박 끝에 대사관이 두 번씩이나 사무실을 옮기는 곳에 파병을 서두를 이유는 없다. 우리 젊은이들의 피를 기꺼이 바쳐야 할만큼 이라크 파병이 마땅하고 급한 일은 아니다.

문 창 재 논설위원실장cjmoo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