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정표시 장치(LCD)와 플라즈마 디스플레이패널(PDP) 등 차세대 평판 디스플레이 세계 1위 자리를 놓고 한국과 일본 업체들 간의 경쟁이 불을 뿜고 있다. 반도체에 이은 차세대 '캐쉬 카우'(cash cow·달러 박스)로 꼽히는 평판 디스플레이는 일본이 세계 시장을 석권해왔지만 올들어 한국 기업들이 대규모 생산라인 증설 및 가동을 시작하면서 일본을 추월하는 기세다.'D램의 반복'위기감
한국의 LCD와 PDP 증산을 바라보는 일본 업계에서는 "메모리D램 반도체의 전철을 반복하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가득하다.
일본이 한발 앞선 연구·개발로 세계 시장을 휩쓸다가 리스크를 감수한 한국의 후발 집중투자에 밀려 사실상 시장에서 철수해버린 D램과 유사한 양상이라는 것이다.
한국측 집계에 따르면 LCD는 이미 올 2·4분기 세계 시장점유율에서 LG필립스LCD와 삼성전자가 각각 21.1%와 18.9%로 1, 2위를 굳혔다.
한때 30% 가량으로 부동의 1위였던 일본의 샤프는 한국세에 밀리고 대만 업체에 잠식당해 시장점유율이 줄고 있다는 것이다.
소니가 LCD를 안정적으로 공급 받기 위해 삼성전자와 한국에 합작회사를 설립키로 한 데서도 한국의 LCD 우위는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지난해까지 일본 업체들의 시장점유율이 70% 이상으로 독점에 가까웠던 PDP도 올 하반기 삼성SDI와 LG전자가 2기 생산라인을 가동하면서 그 동안 월간 생산능력으로 세계 1위였던 일본 FHP(후지쓰히타치 플라즈마 디스플레이)를 넘어섰다.
그러나 각국 TV방송이 아날로그 방식에서 디지털 방식으로 본격 전환하는 2005년께의 수요 폭증을 예상하고 FHP와 마쓰시타 플라즈마 디스플레이가 각각 연간생산 120만대, 파이오니아가 50만대로 증산 계획을 세우는 등 일본 기업들도 설비투자 경쟁에서 물러서지 않겠다는 태세다.
일본 업계 관계자들은 한국과 일본 기업들의 PDP 분야 우열은 대략 내년도부터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LCD와 PDP를 장착한 초슬림형TV를 디지털카메라, DVD플레이어와 함께 '신3종 신기(神器)'라고 부른다.
과거 일본 성장경기를 주도했던 TV, 냉장고, 세탁기의 '3종 신기'처럼 요즘 일본 경기회복세의 견인차라는 뜻이다. 그만큼 일본으로서는 LCD와 PDP는 더 이상 한국에 시장을 빼앗길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민관 합동 기술우위 전략
일본 업체들은 LCD와 PDP가 아직 상용화 초기 단계로 기술력을 통한 제품 개발과 코스트 다운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선발주자인 일본 기업의 연구·개발 성과와 기술우위로 한국 기업과의 차별화를 꾀하겠다는 것이다.
세계 최초로 LCD를 상용화했던 샤프는 지난 10월 역시 세계 최초로 '소리 나는 액정' 개발에 성공했다.
하나의 유리기판에 액정 회로와 오디오 회로를 같이 탑재해 스피커가 따로 필요 없기 때문에 가방에 종이서류처럼 넣고 다니는 '모바일 시트 TV'도 가능하다는 게 샤프측 설명이다.
샤프를 포함해 일본 기업들은 이런 핵심기술은 아예 특허출원을 하지 않는 추세다.
특허를 내면 오히려 기술이 공개돼 힌트를 얻게 되고 특허를 피해나가는 다른 기술 개발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특허를 내지 않아도 모방은 불가능하다는 기술력의 자신감이 바닥에 깔려있다.
삼성전자가 LCD용 컬러필터를 스미토모 화학에 의존하고 있듯이 관련 소재, 장치산업은 여전히 일본의 기술력이 한참 앞서 있다.
PDP도 기본특허의 약 90%를 일본 기업들이 차지하고 있다.
여기에 지난 8월부터 일본경제산업성 산하 연구기관인 신에너지·산업기술종합개발기구(NEDO) 주도로 후지쓰, 히타치, 마쓰시타, 파이오니아, NEC 등 일본의 관련 5개사가 공동연구 거점인 '차세대 PDP개발센터'를 설립했다.
PDP의 난점인 과다한 소비전력을 지금의 3분의 1로 줄여서 범용 반도체 칩 등 값싼 부품 사용을 가능하게 만들어 획기적인 코스트 절감을 이루는 것이 첫 연구과제다.
한 일본 업계 관계자는 "수요변동 등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국 기업의 과감한 투자전략과 일본의 기술우위 전략이 부딪치는 한판 승부가 다가오고 있다"고 말했다.
/도쿄=신윤석특파원 y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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