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세의 나이에 대학에 다니고 있다. 진작에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서 자리를 잡고 결혼도 했을 나이다. "고시 준비를 하다 보니 나이가 차서 학교에 다니는군요". 어떤 분들은 이렇게 짐작하지만 나는 사정이 다르다.나는 북한 평양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25년간 살다가 1997년 한국에 들어왔다. '자유 이주민' 혹은 '탈북자'로 불린다. 28세에 대학에 00학번으로 입학해 4년째 대학생활을 하고 있다.
늦은 나이에 대학 입학을 결심하게 된 이유가 있다. 나는 한국에 오기 전에 이미 대학 졸업장을 갖고 있었다. 북한에서 철도대학을 졸업했기 때문이다. 북한에서는 대학 졸업장이 있으면 전공과 관련된 직장에 취직이 가능하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철도대 졸업장을 갖고 직장을 알아 보았지만 번번이 거절 당했다. 철도청에도 알아 봤는데 철도청사 보일러실 인턴 자리를 제의 받았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탈북자들이 정착하기가 정말 어렵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래서 늦었지만 새로운 인생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 다시 대학에 들어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지금 대학생활은 즐거움과 시련이 교차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 대해 잘 모르다 보니 여러 가지 문제들을 겪었고 해결방법을 몰라 고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나중에는 내가 꼭 대학을 다녀야 하는지에 대한 회의감도 들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여기서 주저앉으면 영영 못 일어날 것 같아 이를 악물고 참아오고 있다.
어느덧 대학생활에 적응해 이제는 후배들도 챙겨주고 그들의 고충도 들어주게 되었다. 아직 잘 모르지만 나보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 사회는 개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역동적이고 진취적이라는 사실을 높게 평가한다. 그렇지만 '마이너리티'에 대한 배려가 매우 부족하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다. 자신보다 조금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되면 아무런 미련 없이 배척하는 현상도 목격하게 된다.
비록 가진 것은 많지 않지만 남을 도와줄 때 많은 것을 배우고 나중에 더 많은 도움을 받게 된다. 소수자도 기죽지 않고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한다.
정 남 연세대 법학4 탈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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