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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세이/괴로운 송년회, 즐거운 송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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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세이/괴로운 송년회, 즐거운 송년회

입력
2003.1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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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회 시즌이다. 해마다 이맘 때면 신문·방송 매체에는 송년회에서 술 적게 마시는 요령이나 폭탄주를 추방하자는 캠페인성 기사가 실린다. 이런 보도는 우리나라의 송년회가 세계에서 유례가 드물 정도로 '화끈하게' 열리고 있음을 말해준다.송년회는 나에게 피하고 싶은 행사였다. 신혼 때인 20여년 전, 외국인과 함께 일했던 남편 때문에 외국인들이 참석하는 송년회에 자주 나가야 했다. 당시 나는 푸른 눈의 외국인들과 서툰 영어로 대화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워 송년회 불참 핑계를 만들기에 급급했다.

외국인들도 송년회를 요란하게 보내고 싶어하는 마음은 마찬가지다. 외국인 송년회에서는 폭탄주가 오가는 일은 드물지만 노래나 장기자랑을 해야 하는 것이 고역이었다. 남편은 술을 못하지만 콜라, 사이다를 연신 들이키며 분위기를 잘 돋구었다. 그렇지만 나는 별다른 장기가 없는 탓에 내 순서가 올 무렵이면 자리를 비웠다가 다시 참석하곤 했다. 그러다가 나는 어느 외국인 송년회에서 참석자들에게 노래를 부르지 않는 대신에 벌금을 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벌금을 모아 어려운 이웃에게 기부하자고 덧붙였다. 나의 제안이 호응을 얻어 나는 송년회 걱정을 덜게 됐다.

그런데 10여 년 전 지금의 아파트로 이사 오면서 송년회가 유익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지금의 아파트로 이사를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엘리베이터 입구에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이웃으로 지내면서 얼굴도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아파트 주민끼리 부부 송년모임을 가졌으면 합니다.' 별다른 생각 없이 참석했는데, 매우 유익했다. 평소에 얼굴만 보고 지내온 이웃끼리 명함도 나누고 세상 사는 이야기도 나누었다. 그러다 보니 아파트 문화가 제대로 뿌리내리지 않은 탓에 겪었던 고민들이 풀리기 시작했다.

그 모임이 벌써 10년째 계속되고 있다. 이제는 '가까운 이웃이 먼 친척보다 낫다'는 속담을 실감하고 있다. 이웃끼리 정을 나누고 자연스레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 직장, 출신학교, 향우회 등 각종의 송년회 안내문이 쇄도하지만 정말로 기다려지는 모임은 당연히 아파트 송년회다. 특히 최근에 새로 이사 온 집들과 교분을 나눌 수 있는 기회라 더욱 기다려진다. 이런 저런 송년회가 많아진 것을 보니 나는 확실히 중년이다.

/박광희·부산 금정구 구서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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