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작가들이 한국 문학의 스타일을 바꾼다." 평론가들이 민감하게 포착한 한국문학의 형질 변화이다. 그 자신 젊은 비평가인 손정수(34) 백지연(33)씨는 문예지 겨울호에서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서사 양식과 화법, 문체가 파격적으로 바뀌는 우리 소설의 최근 경향을 짚었다.손정수씨는 계간 '문학동네' 겨울호에 실린 특집 '한국소설의 진화'에서 김영하 배수아 김연수씨 등 젊은 작가들의 장편소설을 분석했다. 손씨는 "'체험'이나 '관찰'이 아니라 '텍스트'에 의거한 상상력으로 서사를 구성하는 방식이 뚜렷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새로운 서사를 구축할 이데올로기는 마련돼 있지 않지만 기존의 서사에서 이데올로기를 걷어냄으로써 새로운 서사를 구성하는 방식이 한 경향"이라며 배수아(38)씨의 장편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과 김영하(35)씨의 '검은 꽃'을 예로 들었다.
'일요일…'의 경우 낯익은 모티프인 '궁핍'을 다루고 있는데도 "궁핍을 기존의 서사 방식인 경제적 빈곤 차원에 국한시키지 않고 인간의 보편적 존재 조건으로 그려냈다는 데서 문제적"이라고 분석했다.
또 '검은 꽃'이 조선인 이민자들의 멕시코에서의 삶을 그리면서도 기존 서사를 철저하게 규정하던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를 벗겨내고, "이념에 은폐된 '열정'이라는 추상적 영역을 그 자리에 도입했다"고 평했다.
여기에다 김연수(33)씨의 '사랑이라니, 선영아'의 경우 문헌자료의 소설적 도입, 독자의 감각에 밀착한 자유로운 서술 등을 통해 "전통적으로 반복돼 온 '사랑'이라는 테마를 철저하게 탈 낭만화한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스타일을 택했다"고 말했다.
백지연씨가 계간 '문학수첩' 겨울호 특집 '신세대 문화코드와 한국문학의 새로운 지평'에서 발표한 글은 좀더 미세하다. 백씨는 특히 디지털 텍스트의 출현으로 기존 화법과 문체가 변했다면서, 젊은 소설가들의 문체가 '단문체'로 바뀌었다고 짚었다.
주어와 서술어 외에 복잡한 수식어나 비유는 거의 생략된 속도감 있는 문장이 호응을 얻고 있다는 것. 천운영(32)씨의 단편 '멍게 뒷맛'에서의 "나는 꽃을 만들며 살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폐백용 오징어 꽃이다"라는 문장, 정이현(31)씨의 단편 '신식 키친'의 "그녀는 용 무늬의 젓가락을 빼낸다. 씹지도 않고 또 한 움큼의 면발을 집어넣는다"는 문장 등 최근 소설의 단문체가 "서술 주체의 감정을 극도로 절제한다는 데서 기존 작품들과 구별된다"고 말했다.
또 "엘리베이터 걸들의 핑크 재킷에 검은 플리츠 스커트… 디스카운트해주는 그녀들의 리리코스 향수 냄새"(배수아,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처럼 외래어가 무의식적으로 나열되는 문장이 문화기호 그 자체를 현실로 감각하는 젊은 작가들의 한 모습을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또 인물들의 짧고 경쾌한 대사가 스토리의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최근의 경향이라며 "이만교씨의 장편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주인공들의 대사는 시각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으로, 스토리의 설정을 대체하는 속도감과 흡입력을 지니고 있다"고 예를 들었다.
젊은 작가들의 이 같은 개척 의지에 대해 백지연씨는 "대중적 소통 가능성을 끊임없이 탐문하며 스스로의 존재조건을 성찰해나가는 미래의 문학을 꿈꿀 수 있다"고, 손정수씨는 "새로운 서사 방식은 쇠퇴한 삶의 시적 차원을 격렬하게 만들고 있다"고 각각 의미를 부여했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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