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종도 공항 신도시에서 자동차로 10분을 산길로 들어가면 허허벌판에 갯벌을 등지고 선 영종골프랜드라는 연습장을 만난다. 초행인 사람은 '여기까지 누가 찾아 온다고…' 하며 얼굴도 모르는 주인을 걱정하게 될 만큼 아직은 인적이 드문 곳. 하지만 여기가 골프 신데렐라 안시현(19·코오롱)을 탄생시킨 일명 '영종도 외인구단'의 둥지이다. "주니어 선수들이 훈련한다니까 홍보가 되겠다 싶어 받아 주었던 연습장들도 손님이 많아지자 나가달라고 하더군요. 몇 곳을 전전하다 2년 전 '바로 우리를 위해 지은 연습장이구나' 하며 이 곳에 정착했죠. 체력훈련을 할 야산에다가, 담력을 키울 공동묘지까지 옆에 있으니 안성맞춤이었어요."3층의 타석에 인천주니어골프아카데미(IJGA)라는 간판을 걸고 안시현과 세미프로 2명을 포함해 10명을 조련하고 있는 정해심(43·丁海深) 감독. 그는 지난달 미 LPGA(여자프로골프협회) 정규대회인 제주의 CJ나인브릿지 클래식에서 박세리, 박지은, 로라 데이비스, 캔디 쿵 등 세계 정상급 스타들을 꺾고 우승해 단번에 3년간의 LPGA투어 출전권을 따낸 안시현의 코치이자 캐디이다.
"울기도 많이 울었죠. 대회 출전비용을 꾸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 다니는 저를 보고 시현이가 울고, 그럼 저도 시현이가 안쓰러워서 울고…. 나인브릿지 클래식에서 우승하고 인천으로 돌아와 가장 먼저 찾아가 인사 드린 분은 4년 전 제주도지사배 대회때 200만원을 빌려줬던 세분이었어요."
제주도지사배는 안시현이 1999년 중3때 첫 우승을 이룬 뜻깊은 대회. 정 감독은 내기골프를 해서라도 돈을 모아 안시현을 모든 대회에 내보냈는데 이 때는 항공료까지 필요해 포기 직전에 몰렸었다. 그는 "이제는 시현이네도 지하 월세방에서 아파트로 옮기고 나도 월세에서 전세로 올라섰다"며 즐거운 추억처럼 고생담을 늘어 놓는다.
정해심 감독은 PGA(프로골프협회)의 정식프로가 아니고 준회원인 세미프로이다. 골프도 프로에게서 체계적으로 배운 게 아니라 서른이 넘어 독학으로 시작해 6개월만에 싱글이 된 독종이다.
송도고―고려대―현대 농구선수와 국민은행코치, SK 감독을 거쳐 일본 도요다팀 코치로 있는 정해일이 작은 형이고 큰 형도 인천체대에서 유도를 한 운동 집안 출신. 본인도 인천 광성중에서 빙상선수를 해 서울체고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으나 3형제를 모두 운동시킬 수 없다는 아버지의 반대로 뜻을 꺾어야 했다.
"제대 후 자판기 사업을 시작해 꽤 돈을 모았다가 92년 서른두살 때 파산, 알거지가 됐어요. 할 수 없이 친구가 하는 연습장에서 일을 거들다가 프로가 돼 돈을 벌겠다고 연습을 시작했지요. 코치도 없이 리드베터의 테이프와 교습서 등을 보며 미친 듯이 볼을 때리다 보니 곧 70대를 치고 97년 티칭프로, 98년 세미프로가 되었어요."
처음 키운 제자가 현재 세미프로로서 PGA 정식프로를 준비중인 유정식. "선수생활을 한 지 2년이 넘어도 상장 한 번 못 받았다는 연습장 손님의 중학생 아들을 맡고 스코어카드들을 점검하니 후반에 점수가 안 좋더군요. 빙상선수 시절의 강한 훈련프로그램으로 체력을 키우면서 연습시키니 6개월만에 4개 인천대회 중 3개 대회서 우승을 했어요."
그는 15m거리의 옥상 연습장에서도 우승자가 나올 수 있다는걸 보여주면서 인천지역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 체력이 최우선이라는 신념이 더욱 확고해졌고, 이를 계기로 투어프로의 꿈을 접고 본격적으로 주니어 육성에 뛰어 들었다. 마음 편히 운동을 하자는 생각에 6,000만원을 끌어다가 조그만 연습장을 임대, 직접 운영까지 했으나 97년 IMF 직전 모두 날리고 다시 빈털터리가 되었다.
안시현을 만난 건 다음해. 호랑이 코치란 소문을 들은 아버지의 손에 겁먹은 표정으로 끌려 왔다. 하지만 몇 달 안돼 인테리어 사업을 하던 아버지의 공장이 화재로 날아가면서 골프를 못 할 형편이 되었다. "그래도 어떻게 중단시킵니까. 우선 시현이가 골프를 계속 하고 싶은지 의지를 확인했죠. 다음에 세 식구가 사는 방 2개의 20평 월세 아파트를 3개짜리로 옮기고, '이제부터 시현이는 내 딸이다'며 집으로 데려왔어요." 그리고는 3∼4명에게서 받는 강습료와 내기를 해 번 돈으로 한 달에 400만원 이상 들어가는 안시현의 훈련비와 출전비용을 댔다.
올해 KLPGA(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대회에서 두차례 우승해 3회 준우승의 안시현을 제치고 신인왕에 오른 김주미(19·하이마트)도 그에게 10개월을 배웠다. 중3때 먼저 대표가 됐다가 고1때 탈락, 안시현과 함께 상비군에 소속된 김주미의 아버지가 다시 대표선수를 만들어 달라며 맡기고 간 것. 안시현과 한 방을 쓰며 불꽃 튀는 경쟁을 벌인 김주미는 토하면서도 운동장 60바퀴를 돌아야 하는 혹독한 체력훈련을 거치고는 안시현과 나란히 대표팀에 선발돼 서울로 돌아갔다.
안시현은 2002아시안게임 대표의 자리를 스스로 포기했다. 아시안게임에 입상하면 곧바로 LPGA에 들어가는 특혜가 있지만 어차피 프로로 갈 것이라면 하루라도 먼저 바닥부터 시작하자는 각오였다. 결국 2002 세미프로테스트를 1등으로 통과하고 그 해 세미프로들이 겨루는 드림투어의 5개대회에서 3번 우승, 2번 준우승하며 LPGA 정회원의 자격을 따냈다.
"그 때 받은 상금 2,000만원을 시현이 아버지가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사니까 훈련 비용으로 쓰라'며 고스란히 돌려 보냈을 때의 고마움을 잊지 못한다"는 정감독은 "작년 11월 시현이가 코오롱과 스폰서 계약을 하며 가족들이 아파트로 이사했을 때 내 일보다 더 기뻤다"고 말한다.
지옥훈련으로 유명한 이곳의 일과는 새벽 6시반에 2㎞ 달리기로 시작된다. 이어 오전 오후 각 3시간의 연습에서 때리는 공은 1,000∼1,500개. 오후 5시부터는 다시 산길을 따라 5㎞ 또는 10㎞를 달리고 8시부터 1시간 반 동안 각자 자율운동을 한다.
한 달에 두 번은 한밤중에 공동묘지에 올라간다. "코치가 데리고 올라가 15분씩 혼자 있다 내려오게 하죠. 무서우니까 '난 할 수 있어'라고 소리치며 울기도 해요. 얼굴이 하얗게 되는 아이들에게는 우황청심환을 하나씩 먹여요." 부모들이 밑에서 안절부절 못하지만 정감독은 담력과 자신감을 불어 넣는 좋은 방법이라며 밀어 붙인다.
"나인브릿지대회 후 많은 사람들이 안시현의 배짱에 놀랐다고 하잖아요. 사실 이틀째 박지은과 한 조로 편성 됐을 때 졌다고 생각했죠. 일단 드라이버 샷이 30야드는 떨어져 주눅이 들게 되니까요. 그런데 이날 박지은이 1오버, 시현이가 1언더를 쳤어요. 마지막날 역전의 명수인 박세리와 한 조가 됐을 때도 걱정을 많이 했는데 과감하게 정면승부를 걸었잖아요." 정감독 자신도 안시현의 담력에 놀랐다고 한다.
그는 기술적으로 기본기를 가장 중시한다. 처음 한 달간은 누구에게나 스윙연습만 시키고 언제든 폼이 흐트러지면 다시 며칠간 스윙만 반복한다. 박세리보다 더 좋다는 안시현의 스윙도 그 결과이다. 2001년 미국에서 온 분석팀은 한국 대표선수들중 안시현의 스윙이 고칠 것이 없이 완벽하다는 평가를 내린 바 있다.
안시현은 지난달 난생 처음 밟아 본 미국의 모빌 토너먼트에서 29명중 28위의 부진한 성적을 기록했다. 그러나 정감독은 "10월 2일부터 휴식없이 경기를 계속해 피로가 겹친데다 국내 잔디보다 억센 버뮤다 잔디에 적응이 안 돼 어려움이 많았다. 많은 것을 배웠다"며 내년에 현지에서 쇼트게임을 다듬으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다.
안시현은 6∼7일 제주의 한일여자프로골프대항전에 참가한 후 중국 남부의 주하이로 한달 반 동안의 전지훈련을 떠난다. 미국에 가면 관심을 표하는 사람이 많아 들뜨게 되므로 중국에서 훈련에 전념하며 그 동안 떨어진 체력을 보강할 계획이다.
정감독이 제2의 안시현으로 기대하는 제자는 3년간 공들인 김현지(신흥여중 3). 지난 9월 내년도 KLPGA 주최 오픈대회의 출전자격을 6명에게 부여하는 아마추어 선발전에서 국가대표등 쟁쟁한 선배들과 겨뤄 6위를 했다. 안시현 이상의 장타인데다 역시 스윙이 완벽에 가깝다는 평을 듣고 있다.
유석근 편집위원 sky@hk.co.kr
● 약 력
1960년 인천생
인천 광성중(빙상선수)-송도고-부천공대
1997년 티칭프로
1998년 세미프로
2001년 안시현 김주미 국가대표 발탁
2003년 안시현 CJ 나인브릿지클래식 우승
부인 김인향(43)씨와 아들 정준영(인천 광성고 골프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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