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계가 테러의 공포에 떨고 있다. 이제 한국인도 예외가 아니다. 연일 계속되는 이라크의 테러소식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율하고 있지만 테러의 주대상인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포기하지 않고 있고 무고한 한국인의 희생을 목도한 우리 정부도 강경한 입장을 천명하고 나섰다.목숨을 버리며 테러를 감행하는 이라크인들과 반테러 전쟁의 정당성을 강변하는 미국, 그리고 무고한 희생자들과 이로 인해 생기는 또 다른 분노…. 이러한 상호 상승적인 테러의 악순환을 보면서 필자는 '과연 전쟁으로 테러를 근절할 수 있을까'라는 근본적인 회의를 떨쳐버릴 수 없다.
테러는 그것이 지닌 불법성과 폭력성 때문에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 마땅하지만 그것 외에는 달리 자신의 주장을 표현할 방법이 없는 테러러스트의 사정을 감안하면 정치적 성격을 띠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정치적 저항수단으로서의 테러가 조금은 동정적인 느낌을 주는 것은 일제하의 엄혹한 시절을 겪었던 역사적 사실에서 비롯되는 것일 게다. 우리네 역사에서 내로라 하는 항일투사들이 대부분 테러리스트의 범주에 속하는 이들이었다.
지금 이라크의 반미 테러 역시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철저히 정치적 성격의 저항이다. 때문에 이들의 테러를 근본적으로 해소하는 길은 군사력을 동원한 전쟁의 방식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이라크인에게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반미의식과 미국의 대아랍정책에 분통을 터트리는 중동인들의 대미 적개심이 사라지지 않는 한 미국의 반테러 전쟁은 오히려 테러의 강도를 더하게 할 뿐이다.
테러의 근본원인은 애써 무시한 채 현상으로 드러난 테러리스트의 폭력에만 눈길을 돌리고 이를 이유로 그보다 더한 폭력사용을 정당화하는 지금까지의 방식으로는 테러의 잠재적 토양이라고 할 수 있는 반미 적개심을 잠재울 수 없다. 더구나 최근의 테러가 주권국가의 영토를 넘나드는 초국가적 행태를 보이고 있고, 테러를 감행하는 실체마저 불분명한 '포스트 모던'한 양상을 띠고 있는 바에야 미국이 전쟁으로 이라크인 모두를 사라지게 한다 하더라도 테러의 근원은 없앨 수 없게 되었다.
물론 테러로 희생당한 이들의 슬픔과 분노는 그 어떤 명분으로도 평가절하될 수 없다. 미국의 대이라크정책과 직접 연관이 없는 사람들을 공격의 표적으로 삼는 것은 반인륜적 범죄행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테러의 범죄성만으로 미국의 대응이 반드시 정당화될 수 없는 것도 또한 사실이다.
테러방지의 근본적인 대책은 테러발생의 원인을 확실하게 제거하는 것이다. 반테러 전쟁의 명분으로 테러집단을 물리적으로 진압하는 것은 그야말로 하책 중의 하책일 뿐이다. 이는 이미 역사적으로 입증되어 있는 공리이다. 가까운 역사에서 이민족의 제국주의적 침략을 경험한 바 있는 우리로서도 정당하지 못한 지배권력과 정치세력에게 테러의 방식으로 우리의 정당성을 알리려 했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진 일이다.
테러의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존재하고 테러의 동기를 발생시키고 있는 왜곡된 상황이 존재하는 한 테러는 이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테러를 온전히 이기는 길은 테러발생의 근본 원인을 치료하는 정책으로의 전환이고, 이를 통해 잠재적 테러리스트들의 적개심을 해소하는 일이어야 한다. 한국인이 희생당했다는 이유로 더 많은 전투병을 파견해야 한다는 일부의 주장은 무차별 테러와 반테러 전쟁의 '잘못된 만남'이 되기 십상이다.
조선의 반일 테러 기도가 1945년 광복과 함께 근본적으로 사라졌던 사실과 베트남의 반미의식이 전쟁에 의해서가 아닌 미국과의 수교에 의해 원천적으로 해소되었음을 우리는 이미 역사적으로 확인하고 있다. 악을 악으로 대하지 말고 선으로 대하라는 성경의 경구가 새삼 절실하게 느껴진다.
김 근 식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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