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작곡가들의 꿈이지요. 한 20년 후에야 받을 줄 알았는데…." 세계 최고 권위의 현대음악 작곡상인 그라베마이어(Grawemeyer)상 2004년 수상자로 선정된 재독 작곡가 진은숙(43)씨. 독일 베를린에 살고 있는 진씨는 3일 전화 통화에서 "사실 10월 초 출판사가 수상자로 내정됐다는 말을 전해 왔다. 너무 놀라 의자에서 일어서며 '거짓말'이라고 외쳤다"며 ''한국인 최초의 수상이라는 게 특히 감격스럽다"고 밝혔다.그라베마이어상은 미국 실업가 찰스 그라베마이어가 1984년 모교인 켄터키주 루이빌대에 기부한 900만 달러를 기금으로 제정된 것으로 학교측은 3일 정오 진씨의 수상을 공식 발표했다. 지금까지 루토슬라브스키(1985), 리게티(1986), 펜데레츠키(1992), 탄둔(1998), 불레즈(2001) 등 당대 최고의 현대음악 작곡가들이 이 상을 받았다. 상금은 20만 달러(약 2억 4,000만원)로 작곡상 가운데서는 가장 많다.
"앞으로 먹고 사는 문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우스갯소리를 한 진씨는 "개인이 작품을 낼 수는 없고, 출판사에서 작품을 보냈다"고 출품 경위를 설명했다. 94년부터 진씨와 악보출판 및 연주활동에 대해 독점계약을 맺은 부지 앤 훅스사는 라흐마니노프, 스트라빈스키 등 명 작곡가의 악보를 낸 유서 깊은 출판사다.
진씨는 유럽에서는 상당한 지명도가 있는 작곡가. 국내에는 미학자 겸 칼럼니스트 진중권씨의 누나, 음악 칼럼니스트 진회숙씨의 동생으로도 알려져 있다. 서울대 음대 작곡과 재학 시절인 83년 국내파로는 이례적으로 세계적 권위의 가우데아무스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눈길을 끌기 시작했다. 86년 독일로 건너가 함부르크 음대에서 리게티를 사사했고, 이후 독일에 머물고 있다.
"지금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주제로 오페라를 만들고 있어요. LA 오페라극장(음악감독 플라시도 도밍고)과 2006년 초연 예정이죠. 뮌헨 오페라극장 의뢰로 2011년에 초연될 '거울 뒤의 앨리스'를 작곡하고 있습니다. " 내년 가을에는 최고 권위의 현대음악 앙상블 앙테르콩탕포렝이 연주한 작품집이 도이치 그라모폰 레이블로 나온다. '말의 유희' 'Xi' '이중협주곡' 등 대표곡이 수록될 예정이다.
진씨의 수상작은 '바이올린 협주곡'. 그는 "25분 가량의 전통적 4악장 구성이지만 오케스트라와 독주 악기가 하나"라며 "바이올린이 거의 쉬는 부분이 없고, 연주기법이 쉽지 않다"고 소개했다. 이 곡은 지난해 1월 도이체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초연한 작품으로 국내에서는 지난해 5월 '아시아현대음악제'에서 서울시향과 비비안네 하그너의 협연으로 아시아 최초로 연주됐다. 2005년에는 베를린 필하모닉이 연주할 예정이다.
작곡가 강석희씨는 "한국 작곡계가 안고 있는 문제는 기술적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점"이라며 "진씨는 철저한 작곡 기술을 추구, 20세기 들어 잃어버린 새로운 음악의 아름다움을 추구한다"고 평가했다. 시상식은 내년 4월 루이빌대에서 열린다.
/홍석우기자 muse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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