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떨어져 있다. 그러나 이웃에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경포(강원 강릉시)는 그렇게 친근한 바닷가다. 수학여행이든, 신혼여행이든, 휴가여행이든, 누구나 한두번은 다녀왔다. 떠나기를 좋아하는 사람 이라면 열 번도 넘게 다녀왔을 법하다. 그 경포의 바닷가를 찾는다. 겨울의 파도를 만나기 위해서다. 칼바람에 등을 떠밀린 파도가 갈퀴 같은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달려온다. 하얀 겨울이 바다에서 올라오고 있다.흔히 '경포대'라고 말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경포(鏡浦)'는 경포 호수이다. 포(浦)는 '포구'의 의미도 있지만 '일부가 바다와 연결된 호수'를 뜻하기도 한다. 한반도에서 바다와 연결된 호수는 대부분 동해안의 석호(潟湖)이다. 경포호와 같은 석호인 고성의 화진포 호수도 이름 끝에 '포'자가 붙었다. 경포대는 경포호를 내려다보는 언덕에 지어진 누각의 이름이고 경포의 바닷가는 경포해수욕장으로 구분되어 불린다. "경포대 갔다 왔다"는 사람 중에 진짜 경포대에 오른 이는 많지 않다.
경포 여행은 호수에서 시작한다. 거울처럼 청정한 수면을 가지고 있어 맑은 이름이 붙었다. 하늘의 달, 호수의 달, 바다의 달, 술잔 속의 달, 님의 눈 속에 비친 달 등 5개의 달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과거에는 둘레가 12㎞에 달했지만 땅을 넓히려는 노력(?) 덕분에 이제는 4㎞에 불과하다. 붕어, 잉어 등 담수어의 천국이다. 요즘에는 제한적으로 낚시가 허용되나 과거에는 동해안 민물 낚시의 메카였다. 바다와 연결된 호수여서 소금기가 있다. 디스토마 등 담수어종의 기생충이 살 수 없어 청정 잉어회, 붕어회를 맛볼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이제는 강릉시민은 물론 여행객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호수가 됐다. 호수를 빙 둘러 자전거길과 조깅코스가 조성되어 있다. 뛸 필요까지 있겠는가. 걸어서 한 바퀴 도는 데 2시간이면 넉넉하다. 곳곳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 거울 같은 수면을 바라본다. 거친 파도를 만나기 전에 마음을 진정시킨다. 철새들이 물위에서 노니는 모습을 보면 지루하지도 않다.
진짜 경포대에 오른다. 강원도 지방유형문화재 6호인 경포대는 아주 오래 된 누각이다. 고려 말(1326년)에 지어져 수차례 보수를 거쳤다. 외가가 강릉인 율곡 이이가 10세에 지었다고 하는 '경포대부'의 판각을 비롯해 조선 숙종의 어제시 등 역사 속 명인들의 글과 글씨가 걸려있다.
700년 가까이 버틴 누각은 지난 해와 올해 태풍 루사와 매미에 무너질뻔 했다. 피해를 입은 부분을 고치면서 아예 업그레이드했다. 밤에 은은한 분위기를 내는 조명 시설까지 갖춰 여행객들의 발걸음을 잡아끈다.
바닷가로 나간다. 경포 바닷가에는 두 번의 철이 있다. 여름과 겨울이다. 여름이면 해수욕 인파가 몰리고, 겨울이면 겨울 파도를 보려는 사람이 찾는다. '철 지난 바닷가'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여름에 물 속에 들어있던 사람들이 겨울에는 물 바깥으로 나와 있을 뿐이다.
경포의 겨울바다를 즐기는 으뜸 방법은 걷는 것이다. 북쪽 군사시설부터 남쪽 끄트머리(경포호와 바다가 연결되는 곳)까지 약 1㎞. 사람들은 주로 해변의 중간 지점인 바위섬 인근에 몰려있다.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를 보는 맛이 별나고 해변 진입로 바로 앞이기 때문이다.
조용한 분위기를 원한다면 군사시설의 북쪽으로 펼쳐진 해변을 찾는다. 해안도로를 따라가면 닿는다. 백사장만으로 이루어져 있는 해변이 아니라 곳곳에 바위가 돌출되어 있다. 바람이 거셀수록 좋다. 파도로 이야기하는 겨울 바다는 바람을 만나야 제 모습을 보인다.
/강릉=글·사진 권오현기자 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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