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속으로 그려왔던 외국의 정경들이 아닌, 매우 익숙한 산과 들 그리고 도시의 풍경들이 비행기 창밖으로 스쳐 지나 간다. 일본 규슈(九州)다. 후쿠오카(福岡) 공항을 나서자 불과 1시간 전에 호흡했던 서울과는 분위기나 기후가 사뭇 다르다. 따뜻한 남쪽나라의 무언가가 느껴진다.첫 목적지는 나가사키(長崎). 2차 세계대전 당시 히로시마와 함께 미국의 원폭이 떨어진 곳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일본이 쇄국정책을 썼을 때 유일하게 나가사키는 서양, 특히 네덜란드의 문물을 받아들여 남들보다 먼저 발전했다. 그래서 여기저기 독특한 건축물과 분위기가 많이 남아있다.
나가사키를 대표하는 명물은 하우스텐보스(huis ten bosch). 옛 네덜란드와의 교류길이던 바다를 메워 만든 어마어마한 규모의 테마 파크다.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치는 일본기업들이 출자했다. 네덜란드식의 건축물과 풍차들이 눈길을 끌고 날씨가 따뜻해지면 휘황찬란하게 피는 튤립으로 유명하다. 시내로 들어서자 시내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지점을 고이 모셔놓은 곳이 보인다. 일본인들은 여기서 말없이 죽어간 사람들의 원혼을 기리지만 우리에겐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1시간 정도 고속도로를 달리면 운젠(雲仙)에 도착한다. 운젠은 일본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바다와 접한 온천지역이다. 이 국립공원이 위치한 후켄다케산은 활화산으로 분류되며 1992년에도 폭발을 했다. 그 주위의 마을들은 화산재와 용암에 덮여 있어 또 하나의 볼거리를 제공해준다.
구마모토(熊本)는 후쿠오카에 이어 규슈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다. 일본의 3대 성(城)중 하나인 구마모토성이 도시 한복판에 웅장하게 버티고 있다. 역사적인 가치나 그 규모 면에서 실로 대단하다. 카토 키요마사(加藤淸正·임진왜란 때 조선을 침략한 3명의 장수 중 한명)가 1601년에 착공해 7년만에 완공한 성이다.
다음은 벳부(別府). 그 곳은 일본은 물론이며 동양최대 온천 용출량을 자랑하는 곳이다. 온천욕을 좋아하는 일본인들에게도 각광받는 곳이다. 벳부시에 도착하자마자 길거리에 흔한 맨홀 뚜껑위로 뿌옇게 김이 오른다. 대표적인 볼거리는 지옥온천. 해(海) 지옥, 피 지옥 등 무려 10가지가 있는데 그 온천물의 색깔에 따라 붙여진 이름이다. 해 지옥은 온천수가 파란색으로 바다색깔과 같다 하여 해 지옥이며 피지옥은 붉은 온천수에 붙여진 이름이다.
벳부로 가려면 오이타(大分)현에 있는 규슈의 지붕 아소(阿蘇)산을 꾸불꾸불 넘어야 한다. 아직 화산 활동 중인 활화산으로서 산꼭대기에는 연기와 화산가스가 피어 오른다. 화산의 나라 일본이란 말이 실감난다. 화산활동으로 이루어진 여러 가지 지형들이 낯설기도 하지만 반면 눈앞의 장관에는 감탄사가 절로 난다. 웅장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화산의 능선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소와 말들을 보면 자연재해에 담담한 일본인들을 또 다시 느낀다. 화구(火口)까지 케이블카가 운행 중이라 가까이서 화구를 관찰할 수 있다. 직접 눈으로 화구를 보니 그 공포심(?)이 더욱 커진다. 가끔은 화구의 가스분출이 심해 한 달에 절반정도는 케이블카 운행을 중단한다고 한다.
차를 타고 꽤 달려 미야자키(宮崎)에 도착했다. 지도를 보니 미야자키는 규슈 남쪽 끝에 붙어있다. 그래서인지 기후가 다르다. 아열대 식물들이 거리의 가로수로 쓰이고 있으며 눈부시게 파란 태평양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국적인 바다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지리상으로는 일본의 최남단에 있는 외진 곳이지만 분위기만은 굉장히 세련된 느낌이다. 태평양을 따라 나있는 니치난(日南) 해안 도로는 도로란 이름보다 서양식의 루트(ROUTE)란 이름을 붙였다. 따뜻한 기후를 잘 이용하여 남국의 정취를 여기저기 묻어나게 한 일본인들의 재치가 돋보인다.
태평양에 외로이 떨어진 아오시마(靑島)는 그 특이한 지형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작은 섬은 기암과 '빨래판'이라고 불리는 바위로 둘러싸여 있다. 그 모양이 예전 어머님들이 빨래할 때 쓰던 빨래판과 모양이 정말 흡사하다.
북쪽으로 좀 달리면 바닷가에 홀로 우뚝 솟은 45층짜리 빌딩이 멀리서부터 눈에 들어온다. 그곳은 피닉스리조트란 곳으로 다름아닌 호텔이다. 그 옆에 미야자키가 자랑하는 또 하나의 명물 '시가이아 오션 돔'이 있다. 실내 구장, 돔 구장 등을 많이 만들어내는 일본인들이지만 실내 해수욕장은 정말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다. 그 규모 또한 엄청나 그 안에는 모래사장도 있으며 진짜 바다처럼 파도도 친다. 지붕은 개폐식으로 날씨에 따라 열었다 닫는다.
가고시마(鹿兒島)는 미야자키와 함께 규슈 최남단에 위치한 곳으로 경치가 뛰어나 동양의 나폴리라고 부르는 곳이다. 가고시마를 대표하는 풍경은 화산연기가 피어 오르는 사쿠라지마의 모습이다. 가고시마 시내에서 바다 건너 1㎞정도 떨어진 곳에 화산섬이 있다.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활화산이다. 그 크기 또한 굉장해 보인다. 규슈 지하 깊숙한 곳에는 도통 조용한 곳이 하나도 없나 보다. 그럼에도 겉은 항시 청결하고 단정하며 정돈된 모습이다.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김효중 롯데관광 이사
● 지금 규슈에 가면…
일본의 4대 섬 중 제일 남쪽에 자리잡은 규슈는 후쿠오카(福岡)현, 나가사키(長崎)현, 사가(佐賀)현, 구마모토(熊本)현, 오이타(大分)현, 미야자키(宮崎)현, 가고시마(鹿兒島)현 등 7개의 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체 인구는 1,000만명 정도.
항공편은 인천-후쿠오카(매일), 인천-나가사키(주3회), 인천-오이타(주3회), 인천-구마모토(주3회), 인천-미야자키(주3회), 인천-가고시마(주3회) 등 활짝 열려있다. 부산에서 후쿠오카행 배편도 매일 오간다. 평균적인 기온은 북큐슈는 우리나라보다 5∼7도 높으며 남큐슈는 10도 정도 높다. 한반도의 매서운 겨울 추위를 피해 따뜻하고 가까운 남쪽나라로 간다면 규슈를 권장할 만하다.
지역 특산품 또한 다양하다. 후쿠오카는 일본 3대 라면 중 하나인 하카타라멘과 멘타이코라 불리는 명란젓, 나가사키는 옛 서양과의 교류를 바탕으로 처음 만들어진 카스텔라가 유명하다. 미야자키는 휴고나쓰라고 불리는 오렌지와 유자의 맛이 섞인듯한 새콤한 과일로 유명하고, 가고시마엔 우리나라 어묵과도 흡사한 사쯔마아게라는 명물이 있다. 각 지역에서 자부심을 갖고 만들어내는 품목들이라 가는 곳마다 시식을 꼭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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