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입시철만 되면 유독 잘 팔리는 동양고전이 있다. 나관중 원작의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속칭 '삼국지'다. 각 대학이 논술고사를 시작하면서 수험생의 필독서가 됐다. 삼국지가 교양과 문장력, 세상사에 대한 통찰력을 불어넣어준다는 세간의 평과 상관없이 1994년도 S대 수석합격자가 "모씨가 평역한 삼국지를 감명 깊게 읽었다"고 언급한 덕분이다. 삼국지를 낸 출판사는 요즘도 'S대 수석 합격자들이 읽은 책'이라는 광고문구를 쓰고 있다.삼국지는 당시 게임계 최고의 인기물 이기도 했다. 장장 13년간 9편의 연작을 발표한 일본 코에이(KOEI)의 '삼국지' 시리즈가 그 증거다. '스타크래프트'가 등장하기 전까지 한국인이 사랑했던 최고의 PC게임으로, 게임 판매량에서 누적 100만장을 기록하고 있다.
이중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것은 단연 3편이다. 1편과 2편은 당시 16컬러 저해상도 화면에 한글 지원이 안됐기 때문에 일부 마니아들 사이에서만 알려져 있었다. 92년도 11월에 256컬러 고해상도 그래픽과 한글이 지원된 3편이 나오자 비로소 대중적 인기가 폭발했다. 대용량 CD에 담겨 나오기 시작한 4편부터는 조금씩 시들해졌다. 카피가 힘들어진 탓이다.
게임의 목표는 중원의 통일이다. 게이머는 삼국지 이야기 전개에서 한 시점을 선택한 6개의 시나리오 속에서 유비, 조조, 손권 등 당시 자웅을 겨뤘던 군주가 되고, 70여개 성으로 나뉜 광활한 중국 영토를 전투와 외교로써 정복해 나간다. 게임은 부국강병(富國强兵)의 과정이기도 하다. 선정(善政)을 펼쳐 백성들의 충성도와 생산력을 높이고, 막강한 군대를 양성한다. 넓은 대륙을 통치하고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인재를 제대로 등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와중에도 끊임없는 첩보를 통해 정보전에서도 우위를 점해야 한다.
'삼국지를 읽지 않은 자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 는 말을 본따 '삼국지를 해보지 않은 자는 게임을 논하지 말라'는 금언이 게임계에 떠돌 정도였다. 그러나 '삼국지 책은 대학입시 수석합격자를 낳았지만, 삼국지 게임은 재수생을 낳았다'는 말도 있다. 삼국지는 90년대를 치열하게 보낸 세대들에게 이래저래 많은 추억이 서린 게임이다.
/정철환기자 ploma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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