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목표를 수정, 하향 안전지원을 하거나 곧바로 재수를 하는 양자택일밖에 없어요."200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표가 배부된 2일 고3 교실에는 한숨만 가득했다. 평균점수가 지난해보다 8점 정도나 상승했다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발표는 재수생의 강세에 따른 결과로 풀이됐고, 고3 수험생들은 생각만큼 점수가 나오지 않아 '수능 온기(溫氣)'를 전혀 체감할 수 없었다. 상위권이 줄고 중위권이 두터워진 성적분포로 일선 고교의 진학지도에도 비상이 걸렸다.
한숨만 가득한 고3교실
무거운 침묵 속에 성적표를 받아 든 재학생들은 하나같이 걱정스러운 눈빛이었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재수생 등쌀에 기를 펴지 못한 재학생들은 "고교가 사실상 4년제가 된 것이 아니냐"는 자조 섞인 불평으로 재수를 거론했고 일부 학생은 끝내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300점대 초반 점수를 받은 서울 이화여고 허모(17)양은 "9월 모의고사보다 20점 가까이 떨어진 데다 항상 1등급을 유지해 온 언어영역마저 3등급으로 하락해 마땅히 갈 만한 학교를 찾기 어렵다"며 "재수를 해야 할지 목표를 낮춰야 할지 고민스럽다"고 말했다. 서울 휘문고 이모(17)군도 "1∼2점차로 합격이 결정되는 마당에 가채점 결과보다도 5점이나 하락해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라며 "부모님과 상의한 후 재수를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매년 되풀이되는 '재수생 강세'와 '재학생 약세'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서울 A고 진학담당 교사는 "교과과정을 수능에 맞춰 개혁하든지, 수능 자체를 변화시키든지 해결책이 제시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무실은 진학지도 비상
재수생 강세 속에 상위권은 줄고 중위권은 대폭 늘었다는 분석이 나오자 일선 고교는 진학지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했다. 이화여고 탁기태 교사는 "280∼310점대가 많이 두터워져 원서접수 마지막 날까지 눈치를 봐야 하지 않겠냐"고 전망했다.
상문고의 선희영 교사도 "벌써부터 재수를생각하는 학생이 있을 정도로 재학생들이 만족할 만한 점수를 얻지 못했다"며 "재수생 강세를 고려해 대학을 선택하는 지원전략을 짜야 하는데 딱히 방법이 없어 난감하다"고 말했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재학생들을 큰 차이로 따돌린 재수생들은 '원하는 점수를 받았다'는 안도 속에 각 대학의 입시요강에 따라 진로를 선택하느라 분주했다.
/박은형기자 voice@hk.co.kr
전성철기자 for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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