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여수에서 거문도 가는 정기 여객선 중에 신라호라는 게 있었다. 목선(木船)에다가 속도가 느려 거문도까지 7시간 걸렸다(요즘 쾌속선으로는 1시간 40분 걸린다). 평생 선원이던 외삼촌은 고속 페리 선장으로 퇴직을 했는데 그때 신라호 사무장이셨다. 겨울 어느 날 저녁 나는 외삼촌을 따라 섬엘 가게 되었다.파도가 셀 것이라며 외삼촌은 2층 조타실에 붙은 자그마한 방에 나를 밀어 넣었다. 아닌 게 아니라 나로도를 지나자 바다는 평상심을 잃고 울렁대기 시작했고 주변은 칠흑처럼 어두웠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섬엘 간다는 사실 하나로 가슴이 벅차 있었다. 한참 너울을 타던 배는 손죽도를 지나자 곤두박질을 치기 시작했다. 제 멋대로 흔들렸고 뱃머리에서는 거대한 파도가 몸을 찢으며 치고 올라왔다.
선장은 손죽도로 회항하기로 결정하고 선실로 내려갔는데 죽어도 가야 할 일이 있다는 주민들에게 되레 설득을 당해 올라왔다. 항해는 강행되었다. 그리고 초도에 간신히 들러 드디어 거문도로 머리를 틀었을 때는 바다는 아예 미쳐 날뛰기 시작했고 나는 본격적인 공포를 실감해야 했다.
바다 속 거대한 괴물의 혀처럼 날름대는 파도는 아예 이층 브리지까지 치고 올라 문을 때렸다. 뱃머리가 하늘로 솟구치면 이륙하는 비행기처럼 하늘로 올라갈 듯 했고 바닥으로 처박으면 그대로 바다 깊은 속으로 꺼져들 것 같아 나는 좁은 방에서 머리를 양쪽 벽에 쿵쿵 찧어대며 이대로 죽는구나 싶었다. 성탄절 이브에 제일교회 빵 얻어 먹으러 가서 배웠던 기도라는 것을 처음으로 한 때도 그때였다.
언제부터인가 기계 소리도, 사람들의 말도, 무전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파도 부딪치고 배를 두 동강 낼 것 같은 바람소리뿐이었다. 무서울수록 바깥으로 나가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인데 겁이 나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파도에 휩쓸려 죽어버리고 나 혼자 있는 듯 했다. 유령선처럼 긴 칼 찬 시체들이 갑판에서 돌아다니고 캡틴 모자 쓴 해골 하나가 키를 잡고 있는 것 같았다. 미친 밤바다 위에 나 혼자였던 것이다. 꿈이라면 빨리 깨고 죽은 것이라면 얼른 되살아나고 싶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섬에 도착을 해 있었고 폭풍 경보에 배가 왔다고 놀라워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한 창 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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