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 발행을 통한 편법상속 고발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지검 특수2부(채동욱·蔡東旭 부장검사)는 CB 발행을 담당했던 삼성에버랜드 전 사장 허태학(許泰鶴·현 삼성석유화학 사장)씨와 전 상무 박노빈(朴魯斌·현 삼성에버랜드 사장)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1일 밝혔다.★관련기사 A5면
검찰이 고발 이후 3년6개월을 끌어왔던 이 사건의 위법성을 인정, 관련자들을 기소함에 따라 앞으로 삼성그룹 이건희(李健熙) 회장과 장남 재용(在鎔·삼성전자 상무)씨 등에 대한 소환 조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여 큰 파장이 예상된다.
검찰에 따르면 허씨 등은 1996년 10∼12월 주당 최소 8만5,000원의 가치가 있는 삼성에버랜드 CB를 발행하는 과정에서 주주인 삼성 계열사들이 인수를 포기한 실권주 125만여주를 재용씨 등 이 회장의 자녀 4남매에게 주당 7,700원에 발행, 회사에 969억원 상당의 손실을 끼친 혐의다. 검찰은 다른 삼성 계열사들이 삼성에버랜드 주식을 주당 8만5,000원∼23만원에 평가한 근거를 확보했으며, 이 중 최소 가격인 8만5,000원을 적용해 배임액수를 최소 969억원으로 특정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재용씨 등은 발행 CB 물량의 96%를 배정받은 뒤 이를 곧 주식으로 전환, 삼성에버랜드의 지분 64%를 보유한 최대 주주가 됐다. 재용씨는 이를 통해 삼성에버랜드가 주식의 19.3%를 가진 삼성생명과 삼성생명이 지분을 대량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삼성물산 삼성화재 등 주요 계열사들을 지배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삼성측은 "CB는 삼성에버랜드가 긴급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발행한 것으로 불법이 아니며, 다른 계열사와 이 회장은 이번 사건과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참여연대는 이날 논평을 내고 "검찰의 기소 결정은 당연한 것이며, 재벌의 배임 특권을 근절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며 "실질적 의사 결정권자인 이 회장이 불법적 거래를 몰랐다는 이유로 기소 대상에서 제외된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밝혔다.
/강훈기자 hoon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