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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전용관]"… ing" 소녀를 다시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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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전용관]"… ing" 소녀를 다시보다

입력
2003.1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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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극장가엔 두 명의 소녀 이야기가 걸려 있다. '올드보이'의 소녀는 누군가가 쳐놓은 운명의 거미줄에 걸려 기묘한 사랑을 한다. '…ing'의 소녀 또한 기구한 운명의 주인공이다. 아빠는 이미 저 세상으로 떠났고, 엄마와 단 둘이 사는 여고생 민아. 그녀에겐 천형과도 같은 병이 있으며, 항상 왼손엔 흰색 벙어리 장갑을 끼고 다녀야 한다.남성적 시선으로 주변을 바라봐야 하는 세상에서 '소녀'라는 존재의 섹슈얼리티는 언제나 불안할 뿐이다. 영화, 특히 장르 영화 속에서 소녀들의 진심은 항상 오해되었다. '호러 소녀'는 어린 시절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해 헛것을 보거나('장화, 홍련') 한이 서린 채 자꾸 출몰하며('여고괴담') 살인마의 희생자다('해변으로 가다'). '액션 소녀'는 칼이나('화산고') 기관총 같은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남근 대용물'을 들고 설쳐야 한다. '미스터리 소녀'는 말 한 마디 없이 공중으로 치솟을 뿐이며('비밀'), '스릴러 소녀'는 살인사건을 둘러싸고 그저 거짓말을 늘어놓는다('진실게임'). 맨몸뚱이 소녀는 세상과 부딪히거나('눈물' '나쁜 영화') 절망적인 역사 속에서 미쳐버리거나('꽃잎') 연쇄 살인사건의 가련한 희생자다('살인의 추억'). 긴 제목이 인상적인 '대학로에서 매춘하다 토막살해당한 여고생 아직 대학로에 있다'의 소녀는 아예 사이보그다.

영화만을 본다면, 우린 소녀의 진심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다. 그녀들에겐 항상 '롤리타 콤플렉스'라는 레이블이 붙어 있었고 우린 소녀를 희생자 삼아 수많은 비극의 드라마를 빚어왔다. 특히 그녀들은 거의 페티쉬에 가까운 성적 대상이었다. 세일러복, 갈래머리, 뽀얀 피부 그리고 특히 '처녀성'은 그녀들이 영화에 등장하는 이유처럼 여겨졌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과 보는 사람의 무의식 속에서, 그녀들은 항상 강간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무방비 상태의 성적 존재, 바로 그들이 소녀였던 셈이다. 여기까지가 '고양이를 부탁해', 아니 이 영화의 주인공들을 소녀라고 부르기가 조금은 애매하다면 '…ing'가 나오기 전까지 '한국영화 소녀백서'다.

'…ing'는 우리가 항상 정신적으로 불안하거나 성적으로 위험하다고 생각했던 사춘기 소녀에 대해 조금은 다른 시선을 보낸다. 주인공 민아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고통과 웃는 얼굴로 악수한다. 여린 듯하면서도 강한 소녀는 사람들에게 작은 위안과 감동의 시간을 선사한다. 그러면서 그녀는 순정만화 캐릭터로부터도 탈출하는데, 이 아이는 '백마 탄 왕자' 따위를 기다릴 정도로 미련하지 않으며 대신 순수한 사랑으로 가득 찬 행복의 시간을 한 장의 사진 속에 담는다. 너무 이상적이라고?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당신은 '마초 영화'에 심하게 젖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혹은 얄개 영화의 '명랑 소녀'부터 심하게 정형화되기 시작한 그녀들의 진심에 애써 눈감아왔던 것일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소녀 역을 맡은 임수정에 대한 코멘트 하나. 대배우 이미숙과 그렇게 능숙하게 연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배우는, 그 또래에선 임수정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김형석·월간스크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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