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가까이 영화 일을 해왔지만 선뜻 '영화인'이라 말하지 못한다. 영화인은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 몰입하고, 결과를 허심탄회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나는 아직도 결과에 대한 집착이 심하기 때문에 '영화직업인'으로 분류된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 '황산벌'에 기획자로 참여, 전국 1,000만 명 정도의 관객동원을 기대했으나 결과는 300만명에 그쳤다. 주변에서는 "그 정도면 대박"이라고 하지만 내게는 '허벌나게 껄적지근헌' 결과다.그렇다. 나는 '대박병' 환자다. 내가 이 병에 전염된 건 대략 7년 전쯤이다.
처음엔 100만명으로 시작해 200만명, 500만명이 되더니, 지인이 제작한 '친구'가 800만명을 동원하자 어느새 1,000만명이 됐다. 이 정도면 치유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이 병에 전염된 내 친구는 기적적으로 이 병이 거의 나았다. 바로 영화 '황산벌'의 이준익 감독이다. 그는 '달마야 놀자'를 제작해 400만명을 동원한 후 증세가 심해졌던 제작자 겸 배급자였다. 그랬던 그가 감독을 하더니 병이 다 나은 듯 해맑은 얼굴로 내게 말했다. "우리는 '달마야 놀자'로 이미 1,0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네. 극장에서 400만 명, 비디오로 200만명, TV로 400만명… 안 그런가?" 하지만 그건 불치병 환자가 마지막으로 의존하는 사이비 민간요법 같아서 나는 "이 양반아, 극장에서만 1,000만명!"하고 병색이 완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지금 재충전차 유럽여행 중이고, 나는 극장관객 1,000만명 동원을 목표로 다음 영화를 기획하고 있다. 그는 점점 편안해지고 나는 점점 초조해진다.
그는 점점 영화인이 되고, 나는 더욱 더 영화직업인이 되는 것 같다. 그러나 영화판에서는 어느 누구도 결과에 대한 책임을 남에게 묻지 않는다. 그건 자업자득이다. 그래서 나는 영화판이 좋다.
/조 철 현 타이거픽쳐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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