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 쿤데라의 소설'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포로수용소에 갇혔던 스탈린 아들이 '똥 때문에 죽었다'는 실화가 담겨있다.'화장실을 너무 더럽힌다'는 동료 포로들의 비난에 치욕을 느껴 나머지 스탈린 아들이 고압선 철조망에 몸을 던졌다는 것이다. 쿤데라는 스탈린 아들의 죽음이 조국이나 이데올로기 따위의 대의(大義)를 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어느 죽음보다 형이상학적이라고 말한다.
'두사부일체'와'색즉시공'을 만든 윤제균 감독의 '낭만자객'도 이에 못지않은 똥 이야기가 등장한다. 병자호란 전후의 혼란기. 청나라 군인에게 억울한 죽음을 당한 여성의 원한을 풀기 위해 자객 예랑(최성국)과 그의 부하인 요이(김민종) 패거리가 청군 객사에 뛰어든다. 예랑은 청군에게 죽음을 당할 위기에 처하자 "죽기 전에 똥 한 번 싸게 해달라. 저승길 가볍게 가고 싶다"고 애원을 한다. 생사를 오갈 수 있는 찰나에 똥이 마려워 어쩔 줄 몰라 하는 자객이라는 설정이야말로 '낭만자객'이 설치한 웃음의 뇌관이다.
그러나 윤 감독은 똥의 형이하학에만 골몰한다. 똥 묻은 반지 먹이기, 코딱지 먹이기 등 온갖 분비물과 배설물의 상상력으로 관객을 자극한다. 배설물의 성찬을 '생각하면서' 즐기는 걸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일까.
'천녀유혼' 식의 여자 귀신 이야기를 줄거리로 삼고, 홍콩 무협영화의 '객잔'을 무대로 삼은 퓨전사극 '낭만자객'은 '색즉시공' 류의 엽기코미디 공식을 끝까로 밀고 나아갔다. 물론 짐작대로 그 끝에는 허망한 웃음 말고는 아무 것도 없다. 5일 개봉. /이종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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