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고향에 계신 아버지 어머니가 서울 아들 집에 다니러 오셨다. 조그만 보따리 안에 여러 종류의 반찬과 또 여러 종류의 과일이 들어 있었다. 그 가운데 유독 내 눈길을 끌며 참으로 경건한 마음으로 오래도록 바라보게 하는 것 한 가지가 있었다. 밤이었다.그 밤나무를 심은 할아버지는 1890년에 태어나 열다섯 살에 결혼했다. 당장 아침을 먹고 난 다음 저녁 끼니가 없는 가운데에서도 할아버지는 선산 주변에 밤 닷 말을 구해 심었다고 했다. 그때 동네 사람들 모두 그 밤으로 당장의 끼니를 연명하지, 하고 어린 새신랑의 무모함을 비웃었다고 한다.
후일 그 밤나무 숲은 웬만한 집의 일년 농사보다 더 많은 수확을 거두었다. 내 어린 시절에도 그랬다. 그렇게 온 선산에 밤나무를 심었던 할아버지는 20여 년 전에 세상을 뜨셨다. 이제 그 나무들도 몇 그루를 제외하곤 수명을 다했다.
중학교 때 그 얘기를 처음 듣고 할아버지에게 스피노자에 대한 얘기를 해드렸다. 그때 할아버지의 대답이 이랬다. "그 쪽에도 나처럼 미련한 영감 하나가 있었나 보구나."
할아버지의 손을 쓰다듬듯 그 밤을 쓰다듬고 또 쓰다듬었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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