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외환보유액 일부를 해외 주식 등에 운용하는 해외투자 전담기관인 '한국투자공사(KIC·가칭)' 설립을 추진하고 있으나 한국은행이 "국가의 공적 자산을 단순히 상업적 차원에서 운용해선 안 된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청와대 직속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회 관계자는 30일 "외환보유액 등 우리나라 외화자산을 해외에 전문적으로 투자할 기관을 이르면 내년 중 설립할 계획"이라며 "이 같은 내용의 '동북아 금융중심 로드맵'을 10일 대통령에게 보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투자공사는 100% 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될 예정이며, 한은이 운용하고 있는 외환보유액 중 일부를 위탁할 뿐 아니라 별도의 펀드를 만들고 일반인들의 자금도 받아 해외 채권과 부동산 등에 투자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방안은 외환보유액이 1,500억 달러에 육박하기 때문에 더 이상 중앙은행이 안정성 확보만을 목적으로 보수적으로 운용해선 안 된다는 판단에서 나온 것이다. 과다한 외환보유액에 따른 기회비용이 너무 커 일부는 수익성을 목표로 운용돼야 한다는 얘기다. 금융계 고위 인사는 "한국은 금융시장이 너무 좁기 때문에 밖으로 진출해야한다"며 "풍부한 외화자산을 바탕으로 자산 운용업을 육성하는 것이 한국이 금융허브로 도약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재경부 당국자도 "고급 정보를 수집하고 국제 금융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라도 별도의 투자공사 설립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KIC의 모델이 되고 있는 싱가포르투자청(GIC)은 자산규모가 1,000억 달러로 서울에서도 여러 개의 빌딩을 매입한 국제 금융시장의 '큰 손'이다.
그러나 한은은 "싱가포르는 경상흑자 지속으로 국가의 잉여자산이 많은 나라로 GIC는 외환보유액보다 잉여자산 관리를 담당하는 기관"이라며 부실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GIC를 모델로 한 KIC 설립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특히 다양한 국가 자산을 운용하는 GIC와 달리 KIC처럼 운용자산 대부분을 외환보유액으로 충당하는 투자기관 설립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라는 주장이다.
한은 고위 관계자는 "한은의 외환보유액 운용수익률은 깜짝 놀랄 만큼 높은 수준"이라며 "더 큰 수익을 내려면 개도국 주식 등에 투자해야 하지만 국가의 대외지급준비자산을 '고수익·고위험' 원칙으로 운용해도 되는 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현재 세계에서 외환보유액으로 주식투자를 하는 나라는 홍콩, 싱가포르, 사우디아라비아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한은의 다른 관계자는 "현재도 외환보유액의 일정 부분은 중앙은행 책임 하에 골드만삭스 등에 위탁 운용하고 있다"며 "KIC가 설립된다고 하더라도 그 구성원의 능력이 검증되거나 보장되지 않았는데 무조건 위탁운용을 전담시키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한은의 반발에 대해서는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시대착오적 주장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금융계 관계자는 "외환보유액이 넘쳐 나는 상황에서 아직도 이를 국가 자산의 '최후의 보루'라 여기고 보수적 운용만 주장하는 것은 고루한 생각"이라며 "중앙은행도 자리다툼에서 벗어나 전향적인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대희기자 dhnam@hk.co.kr
유병률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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