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책 /심청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책 /심청

입력
2003.11.29 00:00
0 0

황석영 지음 문학동네 발행·전2권 각권 8,800원

황석영이 한국일보에 연재한 장편 '심청'을 단행본으로 내놓았다. '오래된 정원'(2000)과 '손님'(2001)에 이어 출옥 후 세번째다. 소위 동아시아 삼부작의 완결편인 셈이다. 왜 그 삼부작의 마지막이 '심청'이 아니면 안되었던 것일까.

판소리와 고전소설을 통해 널리 알려진 대로 심청은 효녀의 상징이다. 소경인 아비를 위해 자신을 팔아 차디찬 서해 바다로 뛰어들었다가 후일 서해 용왕의 도움으로 왕후가 되는 것은 모두 이 효로 말해진다. 말하자면, 그녀는 지배 이데올로기로 덧칠된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이 덧칠은 지배 이데올로기가 또한 얼마나 허술한지 알려주는 일종의 증환이라고 할 수도 있다. 연꽃이 말해주듯, 죽음의 세계로부터 삶의 세계로 귀환하는 심청의 강인한 생명력은 제도적 언어로는 미처 포착될 수 없는 인간의 원초적 생의 본능을 가리킨다. 그것은 죽음을 가지고 노는 무당의 신명에 비견될 만한 것이기도 하다.

황석영의 '심청'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소설 속에서 심청은 세 번에 걸쳐 개명을 한다. 심청에서 렌화로, 렌화에서 로터스로, 로터스에서 렌카로. 중국어와 영어와 일어로 뒤바뀌는 심청의 이름은 그녀에게 들씌워진 남성적 모더니티의 족쇄가 간단하지 않음을 암시한다. 이 족쇄의 과정은 공간적으로는 중국 난징과 진장으로부터, 대만의 지룽, 싱가포르를 거쳐 일본 오키나와와 나가사키에 이르는 동아시아의 근대화 과정에 대응되며, 시간상으로는 아편전쟁으로부터 인도와 베트남의 동인도회사, 오키나와의 멸망, 일본의 메이지 유신과 민란, 동학과 청일전쟁, 노일전쟁, 그리고 조선의 식민지화에 맞먹는다.

심청은 이 시공을 표류하며, 부잣집 노인네의 시첩으로부터 주루의 기녀와 창녀촌의 창녀 생활을 거쳐 오키나와 사족의 부인이 되었다가 결국 최고 기생을 일컫는 '에라이샹(豪傑女)'으로 자신의 삶을 마감한다. 심청은 몸으로 그 시공을 통과해 나온 자인 것이다.

따라서 남자들이 전쟁을 벌이고 시간의 노예가 되어 돈을 버는 동안, 그녀는 몸으로 터득한 진리를 행한다. 그녀는 기생들의 언니이자 어미가 되어주고 창녀들의 아이들을 보살피며 혼혈아의 보호자가 된다. 소설의 마지막 심청의 죽음을 지켜보는 자들 역시 혼혈아 부부다. 그녀는 마침내 서양과 동양의 접합점이자 모든 죽이는 행위들을 되살려내는 하나의 길, 하나의 상징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황석영의 '심청'은 우리 시대의 만신의 굿, 우리 시대의 바리데기의 서사라고 할 만하다. 그것은 '장길산'으로부터 '무기의 그늘'을 거쳐 마침내 '손님'에 이르러 그 절정에 달한 폭력적 모더니티를 부드럽게 감싸안는 여성성의 세계로 귀착된다. 가장 남성적인 세계를 천착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그가 발견한 공식적 역사의 바깥, 여성의 시간은 이리하여 우리의 미래가 되었다. '심청'은 그 끝이자 시작이다.

신수정·문학평론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