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틴 플레샤코프 지음 표완수 황의방 옮김 중심 발행·1만8,000원
1905년 5월27일 새벽 대한해협. 1만3,000톤급 최신형 전함 5척을 주축으로 순양함과 어뢰정 등 38척의 군함으로 이뤄진 러시아 함대가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급보를 듣고 진해기지를 출발한 일본 함선은 러시아 제독 로제스트벤스키가 승선한 기함 수보로프호를 향해 무차별 포격을 가했다. 이틀 만에 러시아 군함 19척이 격침됐고 7척이 나포됐으며, 5,000명이 전사하고, 러시아 제독을 포함해 6,000명 이상이 포로로 잡혔다. 반면 일본은 어뢰정 3척이 침몰했을 뿐이며 전사자도 117명에 불과했다. 한반도와 만주의 지배권을 놓고 벌어진 이 전쟁은 전투의 규모나 역사적 비중으로 보아 미드웨이, 트라팔가르, 레판토, 유틀란트 해전 등과 함께 세계 5대 해전으로 꼽힌다.
일본 함대를 이끈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 제독은 지금도 전술의 천재로 칭송받고 있으며, 이 지역을 통과하는 러시아 선박은 당시 수장된 유해를 위해 꽃다발을 던진다.
세계 제1의 육군국이자 제2의 해군국이던 러시아가 왜 제대로 힘 한번 쓰지 못하고 어처구니 없는 참패를 당했을까. '짜르의 마지막 함대'는 그 배경과 과정을 1890년대부터 시간 순으로 짚어나간다. 저자인 콘스탄틴 플레샤코프는 소련 과학아카데미에서 박사학위을 받은 역사학자이자 6편의 소설을 낸 작가. 1998년부터 미국 마운트 홀리요크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자는 당시 러시아가 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그 내부에서 찾았다. 먼저 발트해를 출발해 9개월 동안 1만8,000마일(약 2만9,000㎞)을 돌아 대한해협에 도착한 러시아 함대가 처음부터 패할 운명이었다고 본다. 장거리 항해로 병사들은 지칠 대로 지쳤고, 사기는 엉망이었다. 급하게 모병한 수병들은 전투경험이 없었으며 감옥에서 징발한 범죄자도 있었다. 장교와 사병의 차별대우가 심한 데다 수시로 구타 당하는 사병들은 늘 불만으로 가득했다.
더욱이 니콜라이 2세 황제는 유능한 제독 로제스트벤스키의 반대를 무릅쓰고 고물 함정을 함대에 덧붙여 짐이 되도록 했다. 평균 15노트를 유지할 수 있는 최신형 군함으로 이루어진 일본함대에 비해 러시아 군함은 속도도 느리고 포의 정확성도 떨어졌다. 승패를 결정한 결정적 요인은 포탄의 성능 차이였다. 기존의 포탄은 폭약이 전체 무게의 2∼3%인데 비해 포탄의 껍데기가 얇고 폭약을 10%까지 넣은 일본의 신형포탄은 군함의 두꺼운 철판을 뚫고 들어가 한꺼번에 수십명의 목숨을 빼앗았다.
대한해협 해전연구서로는 국내에 처음 소개된 이 책은 러시아 국립 해군문서보관소와 런던 뉴욕 등에 보관된 자료를 토대로 했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 각국과 러시아의 복잡한 외교관계, 국익을 둘러싼 충돌과정이 생생히 담겨있고, 도고와 로제스트벤스키 등 주요 등장 인물들의 출신배경과 언행을 작가적 상상력으로 재구성해 극적 재미를 더했다.
/최진환기자 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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