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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지금은 자연과 대화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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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지금은 자연과 대화할 때

입력
2003.11.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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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록 지음 열린책들 발행·9,500원

'내 앞에 있는 모든 것이 아름답다/ 내 뒤에 있는 모든 것이 아름답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아름답다// 모두가 행복을 가져오네/ 어머니 대지가 있어 나는 행복합니다/ 푸른 하늘이 있어 나는 행복합니다/ 바람이 불어 나는 행복합니다/ 비가 와 나는 행복합니다…// 아름다움과 함께 나는 걷습니다/ 아름다움 속에서 끝을 맺습니다' (밤의 찬가)

이 노래에서 보듯 북아메리카 원주민(인디언)의 삶과 자연에 대한 태도는 기본적으로 달관과 초연이다. 물질에 쫓기지 않고 동물과 식물, 곤충까지도 인간과 평등한 존재로 보고, 그렇게 받든다. 하물며 인간을 피부색, 나이, 성별이 다르다고 차별하는 법이 없다.

그럼에도 백인들에게 삶의 터전을 뺏기고,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야만인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고 보호구역 안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인디언들의 이야기는 애처롭다.

'지금은 자연과 대화할 때'는 인디언의 노래, 전설, 경구, 기도문 등을 모으고 그들의 삶을 바라보는 자세와 교훈을 감성적인 필치로 풀어나간 책이다. 기존 인디언 관련 서적들이 역사, 일대기, 정책, 지혜 등을 다룬 번역서인데 비해 이 책은 저자가 인디언의 문화를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그 의미를 풀어낸 점이 돋보인다.

이 책은 인디언들과 저자가 나눈 일종의 대화이다. 저자가 직접 고른 30여 편의 시와 노래, 40여 편의 이야기를 적절히 배치하고 때로는 자신이 인디언의 입장에서 감상을 털어놓는다.

저자는 라코타 부족의 유명한 전사추장이었던 '앉아있는 소(Sitting Bull)'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바닥에 앉아 고집스럽게 버티는 수놈 버팔로'를 가리키며 자신의 이름처럼 백인들의 설득과 회유에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인디언의 권리를 찾기 위해 애쓰다가 암살됐다. 그는 생전에 이렇게 외쳤다. '백인들이 만든 조약을 우리가 깬 적이 있는가/ 단 한번도 없다/ 그렇다면 백인들은 우리와 맺은 조약을 지켰는가/ 단 하나도 지키지 않았다// 내가 1페니라도 훔친 것을 본자가 있으면 나와 보라/ 그럼에도 그들은 나를 도둑이라고 한다/ 백인 여자가 잡혔을 때 나에게 모욕을 당한 적이 있는가/ 그런 적이 없는데도 나를 나쁜 인디언이라고 말한다…'

인디언의 경구도 가슴 깊이 다가온다. '훔친 음식은 굶주림을 채우지 못한다' '한 명의 적은 너무 많고 100명의 친구는 너무 적다' '두려움은 맞서지 않으면 영원히 너를 뒤쫓아 다닌다.' 겸손하면서도 당당하고, 언제나 대화와 이해를 통해 평화를 추구하려는 자세이다.

이 책의 백미는 자연과 인간, 사랑과 공경, 인생과 행복 등에 대한 단상을 저자가 한편의 우화나 소설처럼 엮어놓은 글이다. 아파치족에서 내려오는 '피리부는 소년'의 이야기는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를 연상시키고, 아버지가 아들을 훈계하는 말은 우리 가정을 돌아보게 한다.

그는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의 문화는 기본적으로 국가계급의 착취나 물질의 오염이 나타나지 않았던 우리 조상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면서 "그러한 영적인 세계는 오늘날 종교간, 민족간 갈등을 풀 수 있는 지혜의 단초를 제공해준다"고 말했다.

서울대 철학과와 대학원을 나온 저자 서정록(48)씨는 현재 거제도에서 살면서 인디언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백제금동대향로―고대동북아의 정신세계를 찾아서' 등의 저서가 있다.

/최진환기자 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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