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극작가 이근삼(李根三)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가 28일 오전 11시 서울 노원구 공릉동 원자력병원에서 폐암으로 별세했다. 향년 74세. 예술원 회원인 이 교수는 1년6개월 전 폐암 말기 판정을 받고 항암 치료를 받아왔다.1929년 평양에서 태어난 그는 평양사범학교 5년 당시 반공 운동에 가담했다가 단신 남하했으며 혜화전문학교(현 동국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육사와 서울대 교단에 섰다가 57년 도미,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59년 귀국한 그는 '사상계'에 물신주의에 빠져 기계적 일상 생활을 거듭하는 한 가정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그린 단막 희극 '원고지'를 발표하면서 극작가로데뷔했다. 이후 풍자와 해학, 패러디 등을 통해 사회 부조리를 날카롭게 비판한 '국물 있사옵니다'(1966) '제18공화국'(1967) '대왕은 죽기를 거부했다'(1988), '이성계의 부동산'(1994) 등의 희극을 썼다. 사실주의에 바탕을 둔 연극이 주를 이루던 한국 연극계에서 현대 연극의 다양한 수법을 소개한 그의 극작은 근대 한국 연극이 현대 연극으로 넘어가는 전환점이 됐다. 또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빼어난 희극(喜劇) 작가로서 '빈정거림의 미학, 인간적인 것에 대한 갈망'(고려대 서연호 교수)으로 요약되는 작품 세계를 보여줬다.
이근삼 교수가 아꼈던 제자인 정진수 성균관대 교수는 "평생을 희극(喜劇)에 전념하신 선생님은 극작가로서 독보적 존재셨다"고 그의 업적을 평가했다. 그가 만년에 쓴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하다'(2002)를 연출한 극단 신화의 김영수 대표는 "항상 유머가 넘치셨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는 가난한 연극인들과 보통 사람들에 대한 깊은 애정을 지니셨다"며 "아들 장례식 다음날 연극 배우 윤주상씨의 주례를 서주실 정도로 연극인들을 사랑하셨던 선생님의 이북사투리가 벌써부터 그립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는 극작가 활동을 하면서 교직에도 몸담아 육사와 동국대 중앙대 서강대 등에서 영문학과 신문방송학을 강의했다. 민중극장의 대표,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이사, 종합유선방송심의위원, MBC시청자위원회 위원장, 과천세계공연예술제 부위원장 등을 지냈다.
유족은 미망인 홍인숙(洪仁淑)씨와 딸 유리(惟悧), 유원(惟媛), 유정(惟貞)씨. 장례는 12월1일 오전 8시 천주교 중계본동 성당에서 가족장으로 치러진다. 빈소는 서울대학교 병원 영안실, 발인은 12월1일 오전 7시. 장지는 충청남도 천안시 천안공원묘지. (02) 760― 2016.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