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28일 SBS 대담 프로에 출연, 각종 국정현안에 대한 입장을 비교적 소상히 밝혔으나 경색된 정국을 풀 획기적 방법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노 대통령은 현 정국의 핵심 변수가 되고 있는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 측근비리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 재신임 문제 등과 관련해선 오히려 기존의 입장에서 더 앞서나간 듯한 모습까지 보였다.노 대통령은 특히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의 불가피성을 거듭 역설하면서 한나라당의 철회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 등 4당 대표와의 회동 가능성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인식을 피력, 당분간 야당과의 대결자세를 바꾸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노 대통령은 또 대선자금에 대한 검찰의 철저한 수사가 오히려 경제의 투명성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인식을 보임으로써 결과적으로 다시 한번 검찰 수사를 독려한 셈이 됐다. 다음은 노 대통령의 대담 요지
검찰수사 속도조절론
이탈리아에서도 '깨끗한 손'수사가 4년이나 계속됐는 데도 그 경제 충격을 조사해 봤더니 인과관계가 없다. 이탈리아 경제가 나빠진 것이 없고 투명성 합리성이 높아졌다는 의견이 있다. 한국에서 이 같은 사건이 다시 신문에 올라오지 말아야 한다. 이는 기업의 신인도를 위해 아주 중요하다. 나도 정말 대강하고 넘어갔으면 싶을 만큼 어렵지만 그것을 견디며 털고 넘어가는 것이 좋겠다. 노태우 정권때는 수조원, 김영삼 정권때는 조 단위, 김대중 정권때는 천억 논란이 있었으나 지난 대선때는 한나라당도 수백억을 넘지 않았을 것으로 보지 않나. 우리 진영은 합법적 부분을 빼면 대개 수십억원 만이 남을 것이다.
재신임 문제
재신임은 해야 한다. 나는 지난 대선에서 선거문화를 바꾸었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런데 존재근거 자체에 심각한 하자가 생겼다. 재신임 과정을 거쳐야 대통령이 나머지 임기를 국민의 양해 하에 역량껏 최선을 다 할 수 있다. 불신임 되면 나로서는 아픈 일이고 국민에게 괴로운 일이지만 그를 통해 한국사회 도덕성을 한단계 올릴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불신임 되면 60일 이내에 다음 대통령을 뽑게 되는데, 엄청난 혼란으로 생각하지만 그 정도에 나라가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검찰이 대통령에게 묻겠다고 하더라도 청와대에 와서 참고인 정도로 조사할 수 있다. 법 앞에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하나의 모범으로 자리잡을 필요가 있다.
특검 거부권 및 대야관계
국정이 파행이라고 파탄으로 가지는 않는다. 파행이라고 하지만 정부는 할일 다 하고 있고 국회가 해야 할일 멈추고 서 있다. 이 파행을 없애기 위해 대통령이 양보해야 한다고 하지만 대통령이 지켜야 할 가치가 큰 것이 있으면 지켜야 한다. 검찰 수사 뒤에 2중으로 특검을 하면 내 주변 사람이 고통스런 수사를 받는 것이니 내가 받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번 특검을 받고 싶었다. 그렇다고 원칙을 훼손해 놓으면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긴다. 최병렬 대표가 제안한 TV토론을 하면 싸우게 될 것이다. 야당이 요구하는 대로 들어주는 것은 옳지 않다.
이라크 추가 파병
역사적 평가가 대단히 부정적일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북핵 문제를 풀어야 하는 우리의 현실이다. 자주권 문제 등으로 미국과 부딪치는 게 도움이 될지, 한미 공조를 돈독히 하는 게 도움이 될지를 따지고, 북핵 문제 해결에 미국과 어떤 관계를 갖느냐는 전제에서 파병을 다룬다. 너그럽게 이해해 달라. 그게 우리 현실이다.
/고태성기자 tsgo@hk.co.kr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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