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영미 모더니즘 문학의 대표적인 비평가 휴 케너가 8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25권의 저서와 1,000편이 넘는 글 등 방대한 저작을 남긴 휴 케너는 특히 에즈라 파운드와 제임스 조이스 연구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휴 케너의 1956년 저서 '더블린의 조이스(Dublin's Joyce)'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에 관해 쓰여진 책 중 가장 중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책에서 휴 케너는 제임스 조이스를 신비에 싸인 작가나 독자에게 충격을 주기 위한 글을 쓰는 작가가 아닌, 글의 소재를 갖고 있었던 작가로 인정하면서 종래의 관점을 바꾸어 놓았다. 조이스의 평생 주제는 다름 아닌 그의 고향 더블린. 세기가 바뀌면서 가톨릭 전통의 고수와 도시화의 수행이라는 이중 과업을 감당해야 했던 도시, 더블린을 다루어내는 작업을 통해 조이스의 '이중서술 기법'이 탄생하게 되었다는 것이 케너의 주장이었다.
1971년 저서 '파운드 시대(The Pound Era)'는 케너의 저작 중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케너는 이 책에서 에즈라 파운드가 작가로서, 아인슈타인 이후 변화된 시간의 개념을 어떻게 소화해내고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후대 작가들― 조이스, T.S. 엘리엇,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와 조각가 앙리 고디에 등― 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서도 살펴본다. 파운드가 평생 집요한 열정을 보여주었던 한문(漢文)과 번역, 경제학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논의함으로써 파운드에 대한 포괄적이면서도 깊이있는 연구를 성취해내고 있다.
휴 케너는 1923년 1월 7일, 캐나다 온타리오에서 태어났다.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가르치던 아버지가 교장으로 재직하던 피터보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토론토 대학의 마샬 맥루한 밑에서 공부한 케너는 문학과 수학 중 어느 쪽을 진로로 선택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했었다고 한다. 1950년 예일 대학에서 학위를 마친 후 출간된 그의 박사 논문이자 첫번째 저서 '에즈라 파운드의 시'는 포터 상을 수상하였다. 이후 1999년까지 산타 바바라, 존스 홉킨스, 조지아 대학 등에서 교직에 몸 담았다.
1950년대 초반 파운드와 가졌던 대화에서 "동시대의 위대한 인물들을 만나는 것이 자네 임무라네"라는 그의 조언을 그대로 따른 케너는 다른 비평가들과는 달리 새뮤얼 베케트, 윌리엄 버클리, 윈드햄 루이스 등과 개인적인 친분을 유지하였다. 여기에 조지프 콘라드, 윌리엄 포크너, 스콧 피츠제럴드 등을 아우르는 비평활동과 함께 예술, 문화비평까지 광범위한 저술활동을 하였다. "비평이란 숨쉬는 것처럼 우리에게 필수적인 것"이라 했던 엘리엇은, 한 문화에 있어 예술과 비평은 공존하지만 예술보다 비평이 더 쉽게 잊혀진다고 하였다. 한 비평가가 사라진 시점에서 비평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박 상 미 재미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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