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전 산부인과 전공의 시절 부인과 병실의 회진 풍경. 연로하신 과장님이 중년의 부인에게 피임을 어떻게 하느냐고 물어본다. 환자는 쑥스러운 표정으로 머뭇거린다. 과장이 “ 아이를 밖에다 버리시지요?” 라고 물어보면 “네”라고 살며시 대답한다. 회진 행렬의 맨 뒤에 있던 나는 처음에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하다가 한참 후에야 슬그머니 웃었다. 바로 질외 사정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 당시만 해도 환자들은 질, 사정이란 표현을 과감하게 하지 못했다.여러 피임 방법 중에서 아직도 질외 사정이 애용되고 있는 것 같다. 우선 귀찮게 준비물을 챙길 필요가 없으며 매우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참으로 문제점이 많음을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한번 사정할 때 배출되는 정액은 2~5㎖로 염소와 비슷한 냄새가 난다. 또 정자 외에 많은 화학물질이 포함되어 있다. 이중 하나가 근육을 수축시키는 물질인 프로스타글란딘이다. 이를 발견하게 된 경위가 재미있다.
아프리카에서는 진통이 미약한 산모에게 남편의 정액을 먹이는 관습이 있었다. 이를 신기하게 여긴 학자가 정액의 물질을 연구하여 프로스타글란딘을 발견하게 되었다. 2002년 6월 영국 BBC방송은 항우울작용을 하는 호르몬이 정액에 함유돼 콘돔을 사용하는 부부에 비하여 질내 사정을 하는 여성은 기분이 좋아진다고 보도했다.
또 정액에는 항세균작용이 있다는 보고도 있다. 알게 모르게 정액이 여성의 건강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물론 정액에 알레르기가 있어 직접 사정을 하면 여성이 쇼크에 빠져 할 수 없이 콘돔을 사용해야 하는 여성도 있다.
성의 만족과는 더욱 큰 관련이 있다. 남자의 오르가즘이란 불과 수초간의 사정 순간이다. 질외 사정을 한다면 남성의 입장에서는 혹시 늦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설 것이며 여성도 임신이 될까 봐 조마조마할 것이다. 남녀 모두 임신에 대한 불안감이 있으면 당연히 성행위가 만족스럽지 못하다.
남편을 조금이라도 배려한다면 마음 편하게 사정의 참 맛을 느끼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피임은 보다 확실한 방법으로 바꾸고, 아이는 안에다 버려야 한다.
/조수현 한양대 산부인과 성상담ㆍ치료클리닉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