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행개시 신호 '0'의 진실은?'화재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자신이 운영하는 주점에 불을 지르도록 사주한 혐의(일반건조물방화 등)로 구속 기소돼 1, 2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피고인이 극적으로 최종 무죄를 확정 받았다.
경기 시흥시에서 스탠드바를 운영하던 장모씨는 1996년 2월 평소 알고 지내던 이모씨가 스탠드바에 석유를 뿌리고 불을 지르는 바람에 전 재산을 날리고 말았다. 그러나 이씨가 방화 이유를 "화재보험금 1억원을 타서 나눠 갖기로 하고, 장씨가 내 무선 호출기에 '0'을 발신하면 범행을 개시하기로 사전에 공모했다"고 주장하면서 장씨는 졸지에 공범으로 몰리고 말았다. 장씨가 실제 8,400여만원의 보험료를 받은 사실도 드러났다. 결국 1, 2심은 장씨의 방화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고, 경매이득금 분배 과정에서 다른 사람을 폭행한 혐의까지 합쳐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이 이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부족하다고 사건을 파기,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내면서 진실은 미궁에 빠졌다.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2부(전수안 부장판사)는 장씨의 혐의를 밝히는 결정적인 증거는 '범행개시 신호 0'의 실존 여부라고 판단, 통신업체에 대한 사실조회에 나섰다. 확인 결과 범행 당시 이씨는 자신 명의의 호출기를 가지고 있지 않았고, 부인 명의의 호출기가 하나 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호출기 문자정보를 보관하는 기한이 지나버린 상태여서 더 자세한 사항은 나오지 않았다. 결국 재판부는 스탠드바를 그냥 팔아도 2억5,000여만원 정도는 받을 수 있었던 점, 장씨가 이씨의 형수와 불륜관계에 있어 두 공범간의 사이가 좋지 않았던 점 등을 이유로 장씨의 방화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고, 폭행혐의로만 집행유예를 확정했다. 그러나 장씨는 이미 1년여를 구치소에서 보낸 뒤였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