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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967>金廷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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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967>金廷漢

입력
2003.1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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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11월28일 소설가 김정한이 88세로 작고했다. 김정한의 호는 요산(樂山)이다. 경남 동래 출생. 동래고보와 일본 와세다(早稻田)대학 부속 제일고등학원에서 수학했다. 등단작은 단편 '사하촌(寺下村)'. 193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사하촌'은 사찰 소유의 전답을 빌어 살아가는 농민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그렸다. 소설 속에서, 종교인의 직분에는 아랑곳없이 권력을 등에 업고 농민을 수탈하는 승려들만이 아니라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가뭄이라는 자연 재해가 사하촌 농민들의 마음을 강퍅하게 만든다. 승려들의 입도차압(立稻差押) 횡포에 맞선 농민들의 집단적 항거로 마무리되는 '사하촌'은 1930년대의 대표적 농민소설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요산은 그 뒤로도 띄엄띄엄 작품을 발표했으나, 태평양 전쟁 발발 뒤 작가로서 제 목소리를 내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자 1943년 절필에 들어갔다. 절필은 해방 이후에도 이어져, 1966년 그가 '모래톱 이야기'를 발표했을 때 문학저널리즘의 관심은 이 단편소설의 됨됨이 못지않게 그의 문단 복귀에도 쏠렸다. '조마이섬'이라는 농촌 마을을 배경으로 일제 시대만이 아니라 광복 이후에도 이어지는 농민 수탈을 그린 '모래톱 이야기'는 30년 전의 데뷔작 '사하촌'의 연장선 위에 있다고 할 만하다.

요산의 소설 세계는 일관되게 강렬한 사회의식을 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소작농을 비롯해 사회의 가장 힘없는 사람들에게 건네졌다. 구한말에서 8·15 직후에 이르는 한 여성의 삶에다 수난의 민족사와 가족사를 포갠 '수라도(修羅道)'(1969)나 나환자 수용소에서 일어나는 불의를 그리며 이상적인 복지 사회의 전망을 꾀하는 '인간단지(人間團地)'(1970)가 그 예다. 요산이 민족문학작가회의 초대 이사장을 맡은 것은 그래서 자연스럽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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