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세탁 감시기구인 금융정보분석원(금정원)이 출범 2주년을 맞았으나 기업과 정치권의 불법 자금거래를 전혀 포착하지 못하는 등 '검은돈' 감시에 구멍이 뚫린 것으로 드러나 제도보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금정원은 2001년 9월 돈세탁방지법 시행 이후 지난달 말까지 국내 금융기관에서 1,518건의 혐의거래를 보고 받아 이 중 357건을 검찰 경찰 국세청 등에 제출했다. 하지만 정치자금과 관련된 혐의거래 보고는 단 한 건도 없었으며, 금융기관 종사자들이 의심스러운 현금 입출금을 알고도 보고하지 않으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게 돼 있으나, 출범 이후 과태료 부과사례도 전혀 없었다.
금정원 관계자는 "현행 돈세탁방지법은 5,000만원 이상의 고액 현금거래 가운데 범죄 혐의가 있는 것으로 의심이 갈 때만 보고하도록 하는 '혐의거래 보고제도'를 채택하고 있다"며 "당초 돈세탁방지법안에 들어 있던 국내 금융거래에 대한 금정원의 계좌추적권도 2001년 국회 법사위 심의과정에서 기본권 침해 가능성을 이유로 삭제돼, 금융기관이 거래자 보호를 이유로 보고하지 않으면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시민단체들은 금융기관이 2,000만원 이상 현금 거래를 금정원에 의무적으로 통보하는 '고액현금거래 보고제도' 도입과 대외 거래에 한정된 금정원의 계좌추적권을 국내 금융거래에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한나라당 김홍신 의원 등 여야 의원 20명도 지난해 11월 이 같은 내용의 돈세탁방지법 개정안을 국회 재경위에 제출했으나, 상당수 의원들이 국민 불편과 사생활 침해 등을 이유로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어 제대로 심의조차 되지 않은 채 1년 넘게 계류돼 있다.
개정안을 제출한 우리당 신기남 의원은 "SK비자금 사건은 2001년 제정한 자금세탁방지법에 결정적 하자가 있음을 보여줬다"며 "재경부 소속 독립기관인 금정원에 2,000만원 이상 정치자금의 거래 흐름을 추적할 수 있는 계좌추적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비자금 조성과 돈세탁을 막기 위해 내년 1월부터 혐의거래 보고의 기준 금액을 현행 5,000만원에서 2,000만원 이상으로 낮추는 한편, 고액현금거래 보고제도와 금융기관이 고객의 신원은 물론 직업과 소득재산 수준 등까지 확인하는 '고객주의 의무제도'를 이르면 2005년 1월부터 도입한다는 방침이다. 금정원 김병기 원장은 "검은 돈의 흐름을 잡아내는 그물망이 이렇게 촘촘해지면, 돈세탁과 탈세를 막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국내 금융거래의 95%가 1,000만원 미만의 거래인 만큼, 고액현금거래 보고제도가 도입돼도 일반 국민에겐 불편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재학기자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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