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풀에 떨어뜨린 담배 불씨가 온 동네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그렇다면 동네를 재건하는데 드는 엄청난 비용을 모두 '덜 꺼진 담배를 버린' 과실을 범한 실화(失火)자에게 물을 수 있을까? 현행 '실화 책임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실화범은 엄청난 손해배상 책임에서 벗어나게 돼있다. 이는 '과실책임주의'의 예외 규정으로,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1995년 헌법재판소도 '아주 사소한 실수로 화재를 일으켜 엄청난 손해를 부른 자를 보호한다'는 이 법취지에 대해 그 당위성을 인정한 바 있다.이에 따라 실화자로부터 받아내지 못하는 화재에 대한 피해보상은 각 피해자들이 가입한 화재보험사로 넘어가게 된다. 화재보험소송의 쟁점은 '어떠 어떠한 상황에서 발생한 화재 피해는 보험금을 지급할 필요가 없다'는 면책사항과 관련된 것이 많다.
대법원 판례 가운데 대학생들의 화염병 시위가 과연 화재보험 약관상 보험사의 면책대상인 '지진, 분화, 해일, 전쟁, 외국의 무력행사, 혁명, 내란, 사변, 폭동, 소요, 기타 이들과 유사한 사태' 중 '소요'로 볼 수 있는가에 관한 것이 있다.
범민족대회에 참석하려는 대학생들이 이를 저지하는 경찰에 화염병을 던지고, 화염병에 맞은 경찰차가 주변 건물을 들이 받아 화재가 발생, 건물 내부가 다 타버린 화재사건에서 보험사는 "당시 사태는 약관상 '소요'에 해당하므로 보험금을 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법원은 "소요는 폭동에는 이르지 아니하나 한 지방에서의 공공의 평화 내지 평온을 해할 정도로 다수의 군중이 집합하여 폭행, 협박 또는 손괴 등 폭력을 행사하는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정의했다.
이어 "학생들이 단순히 경찰의 저지선을 뚫기 위해 경찰을 상대로만 화염병을 투척한 점, 시위 장소도 지하철 역에서 대학교 정문에 이르는 도로로 한정돼 있었던 점 등으로 볼 때 당시 상황은 '소요'로 볼 수 없다"고 판결(93다55975)했다. 면책 사유의 요건을 엄격하게 해석한 것이다.
이에 더해 화재보험 소송의 쟁점은 때로는 '어디까지가 화재인가'라는 질문으로까지 확대된다. '연소의 속도차이'로 인해 화재와는 다르게 분류되는 '폭발'을 어떻게 보느냐가 대표적이다. 대법원은 "폭발로 인해 화재가 발생했을 때 폭발에 따른 직접적인 손해 자체는 보상대상이 되기 어렵지만, 화재가 있고 그로 인해 폭발이 있었다면 특약이 없는 한 이로 인한 손해는 화재보험의 대상이 된다"는 판례(92다45261)를 확립했다. 번개와 전기로 인한 손해도 마찬가지다. 번개를 맞아 피해가 발생했지만, 화재가 나지 않았다면 보험금을 받을 수 없지만 번개 때문에 화재가 났다면 화재로 인한 피해를 보상 받을 수 있다.
화재보험과 달리 사람의 생명을 담보로 계약이 체결되는 생명보험 관련 소송에서 법원 판례의 주안점은 '보험금을 노린 생명 파괴' 인지의 여부다. 상법은 타인의 생명보험 계약에 있어 피보험자의 서면 동의를 강제하고 있으며, 대법원은 이와 관련해 "피보험자의 서면에 의한 동의가 없는 타인의 생명보험 계약은 무효이고, 이러한 경우 보험사가 보험료를 징수하고서도 보험사고 발생 후 동의가 없음을 이유로 계약의 무효를 주장하는 것은 허용된다"(96다37084)고 밝혔다.
이 판례는 보험사가 보험금을 꼬박꼬박 받고 나중에 보험금을 지급할 때가 돼서야 무효를 주장하는 것을 받아 들인 것이다. 이는 '보험사의 부당한 이득'을 눈감아 주면서 만약에 있을 수 있는, 타인의 목숨을 노린 생명보험 계약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법원의 확고성을 나타내고 있다.
보험제도의 취지에 반해 '엉뚱한' 사람이 이익을 볼 염려가 있는 것은 단체보험도 마찬가지다. 상법에는 단체보험 수익자에 대한 별다른 규정이 없다. 이 때문에 판례로 수익자를 확정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당사자의 동의를 전제로 한다는 단서가 있기는 하지만 대법원은 직원들의 사고에 대해 회사가 보험금을 받는 것을 허용하고 있기 때문에(98다59613), 직원의 복리와 유가족의 생활안정을 위해 도입된 단체보험이 오히려 회사만 살찌우게 만드는 폐해를 근본적으로 막아주지는 못하는 실정이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약관설명 상세히 안한 경우 대상 아니어도 보험금 지급해야
보험사는 상법과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에 따라 보험계약의 중요 내용에 대해 가입자에게 구체적으로, 상세히 설명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만약 이를 다하지 않았을 경우, 보험사는 주지 않아도 되는 보험금을 줘야 한다. 이 때문에 약관 설명 의무를 둘러싼 분쟁은 가장 흔한 보험소송 중 하나다.
서울고법은 최근 가족 한정특약 보험 대상에 '동생'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약관 내용을 설명하지 않았다가 보험사고가 발생한 후에야 "피보험자의 동생은 '가족'에 포함되지 않으므로 동생이 낸 사고에 대해 보험금을 줄 수 없다"고 소송을 제기한 보험사에게 패소 판결했다. 가족 안에 '동생'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은 사전 설명 의무가 있는 '보험계약의 중요한 내용'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오토바이는 보험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약관을 사전에 설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오토바이 사고에도 보험금을 지급하라는 판결도 있었고, 보험 계약자가 암에 걸린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해제된 계약을 의도적으로 부활시켰다고 해도 보험사가 계약 당시 '암 발병 사실이 있으면 이를 알려야 한다'는 약관 내용을 설명하지 않아 보험금을 지급하게 된 경우도 있었다.
약관 설명의무에 대해 대법원은 "중요한 내용의 보험약관이라도 보험계약자나 대리인이 그 내용을 잘 알고 있는 경우에는 이를 설명할 필요가 없지만, 계약자 등이 약관 내용을 잘 알고 있다는 점은 이를 주장하는 보험자측에서 입증하여야 한다"고 판결(2003다27054)했다.
또 "특별한 안내 없이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거나 법령에 정해진 것을 부연하는 정도에 불과한 사항까지 설명할 의무는 없다"는 판례도 있다.
/이진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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