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에서 화염병 시위혐의로 구속된 영국 젊은이가 혐의가 조작됐다며 50여일 째 단식, 국제적 논란이 됐다. 청년은 6월 살로니카 EU 정상회담 때 반세계화 시위에 참가했다가 체포됐으며, 경찰은 그의 배낭에서 발견했다는 화염병을 증거로 제시했다. 그는 화염병 소지혐의만 인정돼도 7∼25년 형을 받게 된다. 그러나 최근 공판에서 변호인은 시위현장을 보도한 민영TV의 비디오자료를 반대증거로 제출했다. 비디오에는 청년이 증거물 배낭과는 모양과 색깔이 전혀 다른 배낭을 멘 채 체포되는 장면과, 경찰관이 증거물과 같은 배낭에 화염병을 집어넣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이 사건은 시위 대처에 골몰하는 경찰이 강경 대응의 빌미를 얻기 위해 증거조작 등 사술(詐術)을 쓴 사례로 의심받고 있다. 실제로 이렇게 확인된 사례도 여럿 있다. 2001년 제노아 G8 정상회담 때 이탈리아 경찰은 반세계화 운동가들이 묵던 학교 건물에서 화염병 2개를 발견했다며 심야에 대테러 특공대를 투입, 잠자던 이들을 마구 구타하고 90여명을 체포했다. 이 가운데 60여명이 다쳐 국제문제가 됐고, 진상조사결과 경찰이 화염병을 몰래 갖다 놓은 것으로 드러났다. 진압과정에서 경찰관이 칼에 찔렸다던 것도 조작으로 확인됐다. 이 때문에 경찰지휘관 등 70여명이 가혹행위 등으로 처벌됐다.
■ 경찰이 시위의 폭력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과격행동을 방치하거나 부추긴 의혹은 흔하다. 이탈리아 경찰은 제노아 회담 때 악명높은 네오나치 등 과격세력의 입국을 제지하지 않았다. 이어 이들이 시가지에서 차에 불을 지르는 등 난동을 부리는 것을 방치하다가 평화적 시위대까지 무차별 진압했다. 지난해 스페인 바르셀로나 EU 정상회담 때는 경찰이 시위대로 가장해 버거킹 가게 유리창을 깨는 등 난동에 앞장섰다고 비난받기도 했다. 시위가 과격해져야 강경 진압할 수 있고, 대중이 시위대의 구호에 귀 기울일 겨를 없이 폭력사태를 개탄하는 여론을 조성할 수 있다는 설명이 따른다.
■ 이달 초 민주노총의 전국노동자대회에 화염병이 등장할 것이란 사실을 경찰이 노동계 내부 정보원을 통해 미리 알고 있었다는 프락치 공작의혹이 불거졌다. 경찰이 시위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행여 화염병 준비사실을 알고도 손 놓고 기다리고만 있었다면 문제다. 규제를 크게 확대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개정안이 논란되는 마당에 화염병이 몇 년 만에 다시 등장한 것도 공교롭다. 어쨌든 화염병은 애꿎은 나이어린 전경들을 위협할 뿐 아니라, 시위대가 여론의 지지를 얻는데도 득 될 게 없는 무모하고 자해적인 흉기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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