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들답지 않게 컴퓨터 게임보다는 무협지에 푹 빠져 있는 두 중학생 조카가 있다. 방학이 되어 우리집에 놀러올 때에도 이놈들은 가방 가득 무협지를 싸들고 올라온다. 쌍둥이 형제끼리 서로 부르는 호칭도 '흑두', '백귀' 하는 무협지 식이다. 어쩌다 학교에서 친구들끼리 한 싸움도 내공을 모아 일격을 가했다느니, 또 그것을 살짝 피해 상대의 경혈을 눌렀다느니 하는 식으로 중계한다. 이러니 잠 속에서까지 왜 무협지 꿈을 꾸지 않겠는가.지난 여름 두 놈이 자는 방에 이불을 덮어주러 갔다 온 아내가 실실 웃으며 이제 자신이야말로 강호의 진정한 고수라고 했다.
"그건 또 무슨 소린데?"
"영호는 이불을 감고 자고, 영수는 이불을 걷어차고 자요. 그래서 둘 다 이불을 제대로 덮어주려고 가슴에 손을 대니 영수가 그러는 거예요. 앗, 고수닷. 그러니 영호까지 고수님, 고수님, 그러고."
"그런데 당신은 누가 영호고 누가 영수인지 어떻게 알아? 얼굴이 똑같은데."
"다 고수 나름대로 구분법이 있는 거죠. 쟤들이 올라오면 내가 일부러 파란 티 빨간 티 나눠 입히거든요. 쌍둥이는 자기 이름을 정확하게 불러주면 좋아한대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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