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보전의 보루인가. 개발의 면죄부인가.' 개발공사의 구상단계에서 해당 사업의 환경적 적절성을 평가하기 위해 1977년 도입된 환경영향평가제도의 실효성에 대한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경부고속철도 서울외곽순환도로 새만금간척사업 등 각종 국책사업을 둘러싸고 환경영향평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비난이 환경단체는 물론 정부에서도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부실한 환경영향평가들
'수달 팔색조 독수리 무제치늪 화엄늪….' 환경부가 지정한 법정보호동물 및 습지보호지역인 이들은 모두 경부고속철도 터널구간인 부산 천성산 일대에 분포해있다. 그러나 94년 당시 환경부에 제출된 경부고속철도 환경영향평가보고서에는 이 같은 생태계의 보물들이 모두 누락돼 있었다. 환경단체들은 이 지역에 환경부 지정법정보호종이 19∼30여종 서식하고 있다고 발표해 환경영향평가의 신뢰성에 관한 논란을 촉발시켰다. 결국 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은 천성산 지역에 대한 환경실태조사를 다시 실시했고 지난해 이 지역에 새매 황조롱이 등 2종의 천연기념물이 서식하고 있다고 밝혀 스스로 환경영향평가의 부실을 인정했다.
새만금간척사업의 경우 환경영향평가의 부실 논란이 법정으로까지 번졌다. 89년 최초로 작성된 새만금 간척지 환경영향평가에 따르면 사업완공 후 새만금 담수호의 부영양화와 관련이 있는 총인(T-P)농도 추정치는 0.1ppm으로 농업용수기준(0.1ppm)을 만족시키는 것으로 예측됐으나 99년 민간합동조사단 조사에서는 사업 완공 후 담수호의 총인농도가 최고 0.19ppm으로 예측돼 환경영향평가와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농림부는 8월 새만금 본안소송 3차 공판에서 환경영향평가의 수질예측이 잘못됐음을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구속력과 평가주체 논란
이 제도의 구속력을 둘러싼 논란도 계속되고 있다. 주로 환경부와 환경단체 사이에 갈등이 빚어지는 부분이다. 환경부는 환경영향평가를 '인·허가' 개념으로 해석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이 제도는 '사업승인 전 사업자로부터 평가서를 제출받아 이를 '협의' 해주고 미진할 때 사업승인기관에 공사중지명령을 '요청' 하는 제도라는 것. 반면 환경단체들은 현재 개발압력을 막을 법적 제도가 전무한 상황에서 환경영향평가는 사후환경관리수단이 아니라 규제수단으로 해석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24일 '서울 강남순환도로 강행반대 기자회견'에서 환경단체가 환경부에 대해 불만을 표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날 환경단체들은 2001년 제출된 강남순환도로 환경영향평가서에 대해 환경부가 '협의불가' 입장을 밝혀, 사업중단을 이끌어 낼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환경부는 "절차상 환경영향평가에 대한 보완지시는 내릴 수 있지만 '협의 불가' 통고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울외곽순환도로 북한산 관통도로의 경우에도 환경부는 사업자측에 4차례 보완요청을 한 것이 전부였다.
평가주체도 논란거리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김지영 연구위원은 "환경영향평가는 사업자가 사업이 환경에 어느 정도 영향이 있는지를 '선언'하는 제도"라고 말했고, 이화여대 환경학과 박석순 교수도 "정부내 개발부처 환경부처 사업자중 '책임성'과 '오염자부담' 측면을 고려하면 환경영향평가의 주체는 사업자가 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녹색연합의 정용미 간사는 "사업을 진행하려는 사업자들에게 평가를 맡기면 객관성이 결여된다"며 "사업자가 평가를 맡는 현행 방식은 피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솜방망이 처벌
보고서가 허위 또는 부실작성 되더라도 경미한 과태료 이외에는 별다른 제재수단이 없는 것도 제도 부실의 원인이다. 보고서 허위 작성시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이 처벌 수단의 전부이고 협의기준을 어겨 공사를 진행하더라도 이를 처벌할 규정이 없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평가서 대행업체들이 난립, 최소의 비용으로 환경보고서를 작성해 부실한 평가서가 양산된다는 지적도 나오고있다.
이병인 밀양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환경영향평가의 각종 문제는 이 제도를 개발을 위한 요식절차로 여기는 개발부처와 환경부의 정부내 위상 약화에서 기인한다"며 "환경부 장관이 공사중지 명령 등 행정조치를 내릴 수 있는 권한을 가져야 제도 도입의 취지를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 외국 사례
현재 환경영향평가제도가 도입된 나라는 미국 캐나다 일본 독일 호주 등 주요 선진국이다. 주로 1970년대에 도입됐고 80년∼90년대에 법제화됐다. 우리나라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사업주체는 다른 나라에서도 대부분 '사업의 내용을 가장 잘 파악하는' 사업자의 몫으로 정해두고있다.
미국은 70년대 시행된 국가환경정책법(NEPA)에 따라 중요한 연방정부 행위에 대해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고 이를 문서로 제출하도록 의무화했다. 제도의 감독은 대통령직속 국가환경위원회(CEQ)가 맡고 있으며 CEQ가 환경영향평가의 각종 가이드라인을 설정한다. 주민참여가 평가서 초안단계에 단 한번 허용되는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의 경우 초기단계부터 최종단계까지 여러 차례 주민 참여기회가 주어진다.
일본은 72년 '환경보전대책에 관한 각의요해'에 따라 관련규칙이 마련됐고 84년 통일적인 규칙의 환경영향평가제도가 확립됐다. 환경영향평가가 필수적인 1종사업(도로 댐 철도 비행장 등)과 인·허가 관청이 시행여부를 판단하는 2종 사업으로 나뉜다. 평가주체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사업자이고 미리 정해진 항목을 대상으로 평가한다.
독일은 74년 '환경적합성심사에 관한 법률' 통과로 제도가 도입됐고 90년 의무화했다. 평가주체의 경우 사업자가 예측자료 등 관련자료를 지방 정부에 제공하고 지방 정부가 최종문서를 작성하도록 해 공정성을 담보하도록 한 점이 다른 나라와 다르다.
캐나다는 92년부터 환경영향평가법(CEAA)이 본격 시행됐다. 평가서에 관련 문서 및 정보를 공개하는 공개등록대장 설치의무를 부과한 것이 특징이다. 평가항목은 일본이나 우리나라처럼 지정된 것이 아니라 개별사업마다 다르다.
/이왕구기자
대안 떠오르는 전략적 환경영향평가
사업의 실시설계 단계와 승인단계에서 진행되는 환경영향평가제도가 사업의 시행을 전제로 하고 있어 사업 입지·규모의 변경과 사업 취소 등이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오자 최근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전략적 환경영향평가(SEA·Strategic Environmental Assesment)의 도입이 추진되고 있다.
SEA는 특정한 제도라기보다는 일련의 정책수립 과정을 의미하며 사업구상 초기단계인 입지의 타당성 검토 단계와 기본계획 단계부터 환경성을 검토하고 문제가 있을 경우 대안까지 검토하는 것이 특징이다.
SEA는 사업의 시행단계에서 논란이 일어 '사회적 비용'이 소모되지 않도록 '입지타당성 검토단계-기본계획 단계-실시설계 단계-승인 단계'까지 각 단계별로 특정 요인만을 고려한다. 가령 입지타당성검토단계에서 환경적 요인을 고려했을 경우 하위단계에서는 더 이상 환경적 요인에 대한 평가를 하지 않아도 된다. 의사결정의 상위단계인 입지 단계에서부터 최하위 단계인 건물배치까지 순차적으로 이뤄지며 건물배치 단계에서는 더 이상 입지의 타당성 문제를 논의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즉 이 제도가 도입되면 공사가 절반 이상 이뤄졌으나 결국 입지 타당성의 문제를 놓고 논란이 빚어져 사업이 일시 중단된 새만금간척사업, 대안 노선을 놓고 '공론조사'까지 예정된 서울외곽순환도로 사패산 관통터널 같은 사례의 재발을 예방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환경영향평가제도의 한계가 드러난 1990년대말부터 도입 의견이 제기되기 시작, 참여정부에서는 이 제도 도입이 국정과제로 선정됐다. 현재 한국환경정책평가원에서 관련 연구가 진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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