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두 방향으로 난 창이다. 그 창의 한 쪽은 세상을 향해 있고 세상을 비춰 보여준다. 다른 한 쪽으로는 세상을 그렇게 바라보는 기자의 눈 그리고 신문사의 입장을 되비춰준다. 그래서 신문을 통해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짐작할 수도 있지만 아울러 신문사의 관점과 입장을 읽을 수도 있다. 따라서 객관보도라는 명제는 현실적으로 존재하기 힘든 당위적 요구에 가깝다. 그 대신 기사의 논리적 정합성이나 균형성 같은 범주들이 현실적으로 더 유효한 평가 기준이 된다.전라북도 부안은 군수가 방사성폐기물처리장 유치 신청을 한 7월 이후 줄곧 뉴스의 중심이 돼 왔다. 그리고 기사 작성의 차이가 신문사의 입장 차이를 비교적 분명하게 가르는 대표적인 예로 여겨진다.
핵폐기장 유치를 반대하는 주민들의 시위와 경찰의 진압으로 많은 사람이 다쳤다는 기사가 보도된 것은 신문들마다 같았다. 그런데 "경찰 10명이 둘러싸서 머리를 방패로 찍었어요"(오마이뉴스 11월25일)와 '전경들이 시위대의 전기톱날과 쇠몽둥이에 처참하게 짓이겨지는 난장판'(조선일보 11월23일)이라는 두 기사는 누가 다쳤는가를 두고 정반대 쪽으로 눈길을 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부안 주민들 동정 스케치 기사를 보자. "전경들이 너무 무섭다", "3개월 째 장사를 거의 하지 못했다... 군수 하나 잘못 뽑아 이 고생을 한다"(동아일보 11월21일)는 일반 주민들이 느낄 불안감과 불만을 전달하고 있다. 그에 비해 조선일보 25일자 '부안 르포'에서는 거기에 덧붙여 핵 폐기장 반대가 심한 지역 분위기 때문에 눈치가 보여 아들 취업을 막고, 경찰들에게 칼국수도 팔지 못하는 등의 고충 사례를 싣고 있다. 이는 사안을 보는 미묘하지만 확연한 입장 차이를 나타낸다.
부안과 관련해서 유독 조선일보는 특이한 입장을 보여준다. 즉, 다른 신문들이 부안 문제를 핵폐기장 유치에 국한해 다루고 있는 것과 달리 조선일보는 이를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비판으로 연결짓는 점에서 그렇다.
부안과 관련된 쟁점을 오마이뉴스는 '핵에너지냐, 민주주의냐'(25일)의 선택으로 구체화하고 있는 반면, 조선일보는 '이 나라를 어떻게 할 것인가'와 '내년 총선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선택(9월9일)으로 쟁점을 확대한다. 이런 수준으로 가려면 핵폐기장 선정으로부터 몇 단계의 쟁점을 더 거쳐야 한다. 이런 논리적 비약을 보면서 조선일보가 부안 사태를 정부를 공격하는 하나의 소재로 삼고 있다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경찰력 동원에 대한 모순된 표명도 비슷한 판단을 하게 한다. 9월9일 부안군수가 폭행당한 데 대한 사설에서는 '경찰은 있는지 없는지 폭력을 선동하는 사람들이 매일같이 버젓이 시위에 나타나'라고 써서 경찰력 증강과 엄정 대처를 요구하는 것으로 이해됐는데, 11월24일 사설에서는 '이것은 사실상의 경찰계엄 상황이고, 경찰력으로 지역 주민을 고립시켜 압박하는 폭력과 다름없는 사태'라고 했다. 경찰이 적어도 안되고 많아도 안 된다. 어찌해야 할까?
여러 신문이 원점에서 문제를 다시 풀자고 공통된 제안을 하는 듯하지만, 그 맥락도 사뭇 다르다. 조선일보(11월24일)는 원점으로 돌리든, 설득을 하든 대통령이 책임지라고 등을 돌리는 듯한 문맥을 구사한 반면, 한겨레신문(11월25일)은 김종규 군수 독단으로 유치를 발표한 만큼 절차적 합법성을 결여한 주체는 정부 쪽이라는 좀더 정치한 논리를 펴고 있고, 한국일보는 11월19일과 21일의 사설을 통해 현재의 사태 자체에 초점을 맞춰 주민 투표 약속 이행 또는 백지 재검토 둘 중의 하나가 남아있는 현실적 해결 방안임을 알려주고 있다. 바람직한 언론의 자세는 정부 비판에만 머물지 않고 현실적인 대안 제시까지 가는 데 있다.
/충남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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