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이나 칼럼이 아닌 시의 형식으로 세상에 대해 발언하고 싶었습니다." 첫 시집 '꿈꾸는 평화'(아래아출판사 발행)를 낸 김기정(47)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소감이다. 한반도 평화문제와 동아시아 국제질서 등을 주제로 논문과 연구서를 발표해 온 정치학자인 그가 쓴 시편에는 전공인 국제정치에 대한 날카로운 문제의식이 담겼다."이라크 파병 문제로 달아오르고 갈라선 한국 사회의 논란을 보면서 '은행나무, 이천삼년 시월'이라는 시를 썼습니다. '국제정치서설'연작시 다섯 편도 서구 정치학 이론의 문제점과 강대국 중심의 학문적 경향에 대한 비판을 담았지요."
'약소국 불륜 전략론의 슬픔을 논함'이라는 부제가 붙은 시 '국제정치서설 3'에서 시로 옮겨진 정치학자의 비판의식을 엿볼 수 있다.
'약자는 강자들 틈에 존재한다./ 생존을 위해서라면/ 내 순정조차 주지 못하랴/ 동맹이건, 혈맹이건, 혹은/ 우방(友邦)의 화려한 수사(修辭)를/ 종교처럼 떠받들어,'
국제 평화문제에 관심을 갖고 대학에서 '평화학 강의'를 담당해온 그는 "강의 중에 느낀 감정과 학생들의 반응 등이 소중한 시적 모티프가 됐다"고 밝혔다. 시집에 실린 시 '평화학 강의'연작 여섯 편은 그 모티프를 시로 옮긴 것이다. "강의 중에 학생들이 평화를 주제로 한 시를 찾도록 하고 발표하게도 했습니다. 정치를 공부하는 학생들이지만 문학적으로 교감을 나누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여전히 귀를 모은다./ 평화로운 미래로의 예지,/ 이것은 나 자신에 대한 교화였다./ 몇 학기가 지나면서/ 평화주의자가 된 것은/ 오히려 나였다'('평화학 강의1'에서)는 시구는 강의 중에 얻은 진솔한 교훈이다.
대학 재학 중 문학회 활동을 하면서 시인의 꿈을 품었다는 김 교수는 "유학 갔다 와 강단에 선 뒤 분주하게 살면서도 꿈이 사그러들지 않았다"면서 "10년 전부터 시작(詩作)을 재개했고, 이제 시집을 출간해 소망을 이루게 됐다"고 말했다. "시는 분열과 대립의 세상에서 희망과 기대를 담는 그릇이 된다. 세상을 사랑하는 한 방법으로 시를 쓸 수 있다는 데 떨리고 기쁘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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