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와 티베트 사이에 있는 인구 72만의 부탄왕국은 세계 최빈국 중 하나다. 쇄국정책 때문에 외국인들의 입국이 가장 적은, 마지막 샹그릴라(이상향)로 통하는 부탄은 심심찮게 화제를 제공하고 있다. 작년 6월30일 월드컵축구 결승전이 열리기 수 시간 전, 부탄은 수도 팀푸에서 카리브해의 소국 몬트세라트와 또 하나의 결승전을 벌였다. 203개 FIFA회원국 중 랭킹 202위와 203위간의 꼴찌다툼에서 부탄은 4대 0으로 자랑스럽게 202위를 지켰다. 두 팀은 경기를 마친 뒤 브라질과 독일의 진짜 결승전을 TV로 시청하며 우의를 다졌다.■ 그러나 월드컵을 재미있게 보게 해준 TV가 부탄에서는 여전히 골칫거리다. 1999년 6월 선진문물 도입과 민주화를 위해 TV 시청을 허용하자 범죄가 늘어났다. 가족을 살해하고 공공장소에서 총을 난사하고 술취한 청소년들이 은행을 터는 모방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TV를 다시 없애자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지만, 이미 문명의 맛을 들인 국민들의 욕구를 억압했다가는 폭동이 일어날 지경이다. 불교교리를 충실히 지켜 온 부탄사람들은 벌레를 죽이는 것도 죄로 알 만큼 순진했으나 지금은 현실과 TV를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 그런 부탄이 내년부터 세계 최초의 금연국가가 된다. 외국인들은 담배를 갖고 갈 수 없다. 담배 판매는 불법이며 담배를 피우다 걸리면 벌금을 내야 한다. 이미 팀푸시의 20개 구 중 19개 구는 흡연을 금지하고 있다. 고립주의정책을 견지해 온 나라답다. 부탄은 1960년대부터 현대화를 지향하면서도 외국의 경제지원 제의가 자신들과 맞지 않으면 거부했고, 우리처럼 고도성장을 추구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흡연과 같은 문제는 개인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는 반론도 거세다. 미미하지만 그 동안 진전된 민주화가 이런 논쟁을 가능케 한 셈이다.
■ 우리는 민주화가 너무 진전돼 6개월이 넘게 담뱃값 문제를 풀지 못하는 것일까. 어제 총리가 주재한 정책현안 조정회의에서도 또 마무리가 되지 않았다. 60.5%인 성인흡연율이 선진국처럼 30%로 떨어질 때까지 계속 인상하는 안도 나왔지만, 발표는 외국과 비교해 적절한 선에서 단계적으로 인상한다는 것뿐이다. 추가수입의 절반은 건강증진, 절반은 지방세수 보전·잎담배농가를 위해 쓴다니 담배를 피워야 하나 끊어야 하나. 아직도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은 죄인처럼 고개를 숙인 채 "남의 돈을 가지고 잘들 떠드네"하는 생각을 할 것이다.
/임철순 수석논설위원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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