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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메이커]작곡가 이경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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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메이커]작곡가 이경섭

입력
2003.1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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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집 '슬픈 영혼식'을 준비할 때는 정말 미친 사람 모습이었지요. 한달간은 집안에 틀어박혀 씻지도 않고 종일 가슴 뭉클한 영화 비디오와 소설들을 뒤졌어요. 짙은 감성과 여운을 가슴에 담으려고요."보통은 조용히 혼자 여행을 떠나거나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다 보면 악상이 떠올라 어렵지 않게 곡을 쓰는데, 신인 조성모의 1집이 뜻밖의 대박을 터뜨리고 나니 2집의 부담감에 피가 마를 정도였다는 것이다.

이경섭(31)은 '발라드 왕자' 조성모의 애절한 히트곡들을 쓴 작곡가이자 밀리언셀러가 된 5장의 음반을 기획·제작한 프로듀서이다.

1집 '투 헤븐'(180만장)에 이어 2집 '슬픈 영혼식'도 200만장을 넘기고, '가시나무'등 리메이크 곡들을 담은 2.5집 '클래식'과 3집 '아시나요', 4집 '잘 가요 내 사랑'을 포함해 총 5차례 음반의 판매량은 1,000만장에 이르렀다.

조성모를 흔히 철저한 마케팅 전략에 의해 만들어진 가수라고 한다. 98년 '투 헤븐'이 발표될 때부터 남다르게 뮤직비디오가 먼저 화제가 되었다. 눈앞에서 여자친구가 자동차에 갇혀 불에 타 죽는 것을 보아야 하는 남자의 애절한 사연을 담은 영화같은 뮤직비디오는 이병헌 김하늘 두 주연배우만 나오고 가수는 단 한번도 모습을 보이지 않아 궁금증을 유발하는 새로운 홍보기법을 썼다.

'얼굴없는 가수'가 음반판매 25만장을 넘어서며 TV에 얼굴을 내밀고 본격적으로 활동하자 판매는 가속이 붙어 순식간에 100만장을 돌파했다. '투 헤븐'은 99년 MBC가 서울지역대학생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20세기 한국대중가요사에 기록될 젊은이의 노래'에서 서태지의 '난 알아요'에 이어 2위로 꼽힐 정도로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다음 2집 '슬픈 영혼식'의 뮤직비디오는 신현준 최지우가 출연하고, 죽은 애인의 사진을 안고 결혼식을 올리는 슬픔을 노래하는 내용.

이같이 이어진 드라마식의 뮤직비디오는 계속 화제를 만들며 조성모 음반에 대한 기대와 관심을 고조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뮤직비디오들도 가슴을 에는 듯한 이경섭의 애절한 곡들이 바탕이 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음이 물론이다.

그는 이색적으로 체육학과 출신이다. 음대 진학을 희망했지만 준비가 늦어 음악 다음으로 좋아하는 체육을 선택했다. 어린 시절의 음악 교육이라면 누구나 하듯이 피아노학원에 가 바이엘 정도를 배운 게 전부였지만 혼자서 만화영화 주제가와 유행가를 칠 만큼 천재성이 있었다.

고교 시절에는 모든 장르의 음악을 가리지 않고 들었으며 특히 하드록에 심취해 '시나위' '부활' 등 록밴드의 공연은 빼놓지 않고 따라다녔다. 대학 1학년 말부터 본격적으로 작곡을 수업하다가 92년 미스터 투의 '나의 토요일'로 데뷔했고 93년 MBC 테마극장의 삽입곡인 '의미없는 시간'이 알려지면서 재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95년 김정민 2집의 타이틀곡 '슬픈 언약식'은 작곡자와 가수 모두에게 출세곡이 되었다.

김정민은 1집 때만 해도 미성의 가수였으나 2집 준비 중 허스키가수로 변신해보자는데 의견을 모았다. 그리고 사랑과 이별을 주제로 한 노랫말에 록 발라드 풍의 멜로디로 만든 '슬픈 언약식'은 단숨에 김정민을 스타덤에 올렸다. 이경섭이 이와 함께 만든 흥겨운 유로댄스 스타일의 '붐붐붐'은 김정민의 콘서트를 달구는 인기곡이 되었다. 김정민은 올해 초 6집앨범에서도 타이틀곡으로 이경섭의 '원(願)'을 불러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경섭은 '슬픈 언약식' 하나로 매니저들이 곡을 받기 위해 줄을 서는 인기 작곡가의 대열에 들어섰고, 96년 김돈규의 '나만의 슬픔'과 97년 김경호의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의 연속 히트로 입지를 굳혔다.당시 댄스곡중 가장 빠른 노래였던 벅의 '맨발의 청춘'도 선풍을 일으켰다.

그는 언제나 영상을 중요시 하는 작곡가이다. 멜로디와 함께 머릿속에 그림을 그린다. 피아노 앞에 앉으면 드라마에 배경음악을 까는 느낌으로 곡을 쓴다. 또 극적반전을 좋아한다. 절제된 음으로 시작해 터질 듯 몰아쳤다가 다시 숨을 죽이는 형식으로, '슬픈 영혼식'과 '명성황후' OST가 대표적이다.

당연히 드라마와 영화음악을 많이 맡았다. TV드라마 '종합병원' '로망스' '그 햇살이 나에게' '복수혈전' '명성황후'와 영화 '청풍명월' '동갑내기 과외하기' 등의 음악이 그의 작품. 지난해에는 MBC 수목드라마 '그 햇살이 나에게'에 삽입된 '내 품에 가득히' '왜 그랬나요'와 같은 시간 KBS 명성황후의 '나 가거든'이 모두 그의 작품이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조재현 최민수 주연의 '청풍명월'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무협영화이지만 브로드웨이 출신인 세계적 뮤지컬스타 이태원으로 하여금 주제곡 '브레이브 하트'를 영어가사로 부르게 하는 파격을 시도했다. 국제시장으로의 진출을 염두에 두며 장엄하면서도 애절한 분위기를 연출한 수작이었다.

그는 제2, 제3의 조성모를 만들고 싶어 한다. 그러나 지금은 음반을 사고 듣는 사람의 의식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활동을 늦추고 있는 상태이다. 대신 내년 3월 음악아카데미를 개원할 예정. 작곡 작사 연주 프로듀서 가수 부분에서 모두 실전위주의 교육을 하게 되며 특히 자신이 최고라고 자부하는 OST를 공부하려는 아마추어 작곡자들이 많아 이 쪽에 주력할 생각이다.

지금까지는 낯가림을 하는 성격이라 많은 가수에게 곡을 줄 기회가 없었지만 점차 적극적인 대인관계로 활동폭을 넓힐 생각이다. 근래에는 연예계 마당발인 류시원을 통해 탤런트들과 가까워지면서 박광현에 '비소'를 주었고, 박용하로부터도 곡을 부탁받았다.

유석근 편집위원 sky@hk.co.kr

● 약력

1972년 서울생 영동고―경희대체육과

1992년 미스터 투의 '나의 토요일'로 데뷔

1995년 김정민의 '슬픈 언약식' 발표

1997년 김경호의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 발표

1998∼2001년 조성모 1∼4집 제작

97, 99, 2000년 SBS 최고작곡가상 수상

● 그가 말하는 조성모

95년 4인조 무명 댄스그룹의 멤버로 가수의 꿈을 키우다 이경섭을 만나 오디션을 받은 조성모는 다듬어 지지는 않았지만 '느낌'이 있었다. 정통적인 가창력보다는 색깔을 선호하던 이경섭에게는 쓸만한 재목이었다.

"나도 연륜이 없던 때라 시간을 갖고 같이 배우며 만들어 가자는 생각이었죠." 97년 조성모가 학비가 없어 군에 입대해야 할 상황에서는 등록금을 만들어 주어 연기시키기도 했다.

조성모에게는 행운도 따랐다. 그의 출세곡 '투 헤븐'은 당초 드라마 삽입곡으로 만들어 지난해 드라마 로망스의 주제곡 'Promise'를 부른 한성호에게 줄 예정이었지만 제작자가 드라마를 따오지 못하는 바람에 보류됐다가 조성모에게 넘어간 것.

조성모 1집의 성공에는 물론 마케팅 전략이 큰 역할을 했다. 이경섭은 이전에 유승준이 뮤직비디오를 만들었지만 그의 음악에는 비트가 있어 드라마화 하기 어려웠던데 반해 발라드곡은 그림과 스토리를 강조한 뮤직비디오가 가능하다는 점을 들어 당시 조성모의 소속사인 GM기획의 김광수 사장에게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연습 안 하면 숨이 막힌다" 고 할 정도로 조성모는 연습벌레였다. 2집을 준비하던 중 지나가는 소리로 "'나이트 메어'에서는 마이클 잭슨 같은 보컬을 내야 한다"는 주문을 하자 조성모는 이미 스타덤에 오른 상태임에도 불구, 혼자 연습끝에 그 목소리를 만들어냈다.

이경섭과 조성모는 4집이 끝난 후 결별했다. "성모가 술을 마시고 찾아 와 계속 같이 하자며 울고 매달리기도 했으나 음악색깔을 바꿔보아야 할 때라는 판단에서 단호하게 끊었다"는 게 이경섭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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