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계의 오른팔이 되어 조선 개국 혁명을 주도하고 한양 천도, 법률 정비 등을 통해 왕조의 기틀을 잡은 경세가 삼봉(三峰) 정도전(鄭道傳·1342∼1398)의 정치사상을 재조명하는 학술회의가 열린다. 이번 학술회의는 특히 처음으로 '삼봉학'이라는 이름을 걸고 난세를 극복한 정도전의 정치가적 역량과 사상 세계를 깊이 있게 살피는 자리로서 눈길을 끈다.삼봉 정도전 기념사업회(회장 한영우 한림과학원 특임교수) 주최로 29일 오전 10시 서울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열리는 제1회 삼봉학 학술회의 주제는 '정치가 정도전의 재조명'. 정도전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일찍이 삼봉의 정치·학문 세계에 주목해 단행본 여러 권을 낸 한 교수는 "삼봉에 대한 관심이 크다는 것은 세상이 그만큼 태평하지 못하다는 방증"이라며 "삼봉을 만나 난세를 풀어가는 지혜를 배울 수 있다면 행운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율곡학, 퇴계학, 다산학과 어깨를 겨룰 만한 (삼봉학) 학자층이 형성돼 가고 있으며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것은 물론 외국에서도 삼봉 연구자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라고 체계적 삼봉학 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학술회의에서는 최상용 고려대 교수가 '정치가 정도전을 생각한다'를 통해 삼봉을 이탈리아의 시인이자 정치가인 단테처럼 분권 정치 등 근대적 정치 사상을 선구적으로 정립한 인물로 평가한다. 또 이익주 서울시립대 교수는 고려 말 신흥 개혁 세력의 성장이라는 측면에서 삼봉의 위상을 조명한 '고려말 정국에서의 정도전의 정치적 위상'을, 문철영 단국대 교수가 정신분석학의 틀로 삼봉의 성장과 출세 과정을 해석한 '정치가 정도전의 자아 정체성 위기와 극복 과정'을 발표한다.
논란을 부를 논문은 박홍규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가 발표하는 '정도전의 공요(攻遼) 계획 재검토'. 삼봉이 명·원 교체 이후 고구려 고토 회복이란 대의를 내걸고 명 정벌을 주장하며 군사를 양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것은 요동정벌 기도가 아니라 군 지휘체계의 일원화라는 목적을 위한 대내용 '전술 차원의 방편'이라는 주장이다. 박 연구교수는 "정도전은 고구려의 영토 회복이 자신의 원대한 이상이라고 말한 적이 없는 것은 물론 저술 어디에도 그런 암시가 없다"며 "그는 처음부터 (자신과) 조선의 사직을 지키기 위해 군사훈련과 군제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했으며 명의 압력이 강해질수록 그 강도를 더해갔을 뿐"이라고 지적한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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