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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정물화를 지루하다 했는가/가나아트센터 "정물 아닌 정물"전 내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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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정물화를 지루하다 했는가/가나아트센터 "정물 아닌 정물"전 내일부터

입력
2003.1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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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물은 단지 '테이블 위의 움직이지 않는 물체를 그린 그림'일 뿐인가. 더 이상 진지한 고민이나 논의가 불필요한 가장 오래된 미술, 닳고닳은 '벽에 걸린 회화'일 뿐인가. 가나아트센터가 서울 평창동 전시장에서 28일 개막하는 '정물 아닌 정물' 전은 정물이 결코 낡은 장르가 아님을 보여준다. 20세기 초반의 고전적 정물화부터 2003년 현재의 미디어 설치 작업까지, 인간의 감정을 정화하고 고양하는 정물의 아름다움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한 해를 보내고 또 새로운 한 해를 맞는 시간, 관객으로 하여금 차분히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전시다. 전시작은 프랑스 인상파 화가 르누아르와 상징주의 화가 오딜롱 르동의 단아한 고전적 정물화부터 각각 독일과 영국의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안젤름 키퍼와 데미언 허스트의 현대적 정물까지, 또 도상봉과 김환기의 동양적이고 명상적 정물화에서 젊은 작가 도흥록과 박선기의 감각적이고 신선한 작업에 이르는 국내외 30여 명의 작품 70여 점이다. 회화뿐 아니라 미니멀 계열의 조각, 첨단의 미디어 작업과 설치 등 형식도 다양하다. 화랑에서 하는 전시지만 내용은 미술관 기획전 못지않게 알차다.전시장을 들어서면 우선 이탈리아 국민화가로 불리는 조르지오 모란디의 정물화 네 점이 차분하게 관객의 시선을 끈다. 흰색과 파스텔 톤 회색, 갈색의 따뜻한 색상으로 우유통, 물병, 잔 등을 단순한 조형적 구도에 배치한 그의 그림은 명상적이다. 이지적인 추상화처럼 보이기도 하는 그의 이런 대표작들이 국내에 본격 소개되는 것은 처음이다.

다 같이 꽃병을 그렸어도 르누아르의 그림이 인상파 특유의 붓질로 반짝이고 눈부시다면, 그와 같은 시기의 작가 르동의 유화는 환상적 느낌을 준다. 흐릿하게 처리한 배경과 탁자에 놓인 어두운 보랏빛 화병에 꽂힌 화사하게 붉고 노란 꽃, 연초록 잎사귀가 화면에서 시선이 떠나고 나서도 오래도록 잔영으로 남는다.

역시 국내 처음 소개되는 러시아 출신 추상미술 작가 니콜라 드 스타엘의 정물화는 신비롭다. 하얀색 배경에 역시 하얀색 접시에 놓인 과일 몇 개. 사라져 버릴 듯 흐릿하게 처리한 윤곽 속에서도 화사한 과일의 색조에서는 작가의 어떤 격정적 내면이 감지된다.

안젤름 키퍼의 2000년 작인 '천 송이의 꽃을 피우자'는 길이 6m, 높이 3m에 달하는 대작이다. 황량한 들판에 가득 찬 말라 가는 듯한 풀과 꽃들이 거대한 공간감을 준다. 데미언 허스트의 작품은 그림 같지만 화면에 실제 나비 일곱 마리를 부착해 만들었다.

해외 작가로 이들은 물론 피카소와 함께 활동한 입체파 조르주 브라크의 유화, 지아코모 만주의 브론즈 조각, 탐 웨슬만과 도널드 저드 등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하나같이 눈길을 잡는다.

국내에서는 김환기 박래현 손응성 원경환 윤중식 이길래 이달주 이봉상 천경자 황혜선 등 작고한 대가부터 중진, 신진의 작품이 고루 나왔다. 조각가 도흥록은 스테인레스로 만든 커다란 사과 안에 소형 비디오 화면을 설치한 작품을 내놨다. 눈부시게 반짝이는 은도금한 금속의 사과, 그 속에서 전개되는 푸른 화면의 영상은 현대적인 3차원 정물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최근 숯을 이용한 설치 작업으로 주목받은 젊은 작가 박선기는 하얀 색으로 조각한 가상 건축물에 작은 사과를 올려놓은 작품으로 우리 전통 수묵산수화의 여백의 미를 느끼게 한다.

동양적 직관과 서구적 추상이 어우러진 김환기의 그림은 이번 전시의 성격을 대변하는 듯하다. 옅은 푸른색 장막을 배경으로 평소 그가 즐겨 그리던 항아리들을 삼단 구도로 배치한 유화 '정물'에서는 정물화만이 줄 수 있는 감동이 한껏 배어나온다. 넘치는 시정, 은은한 격조, 그것들을 한데 감싸 안는 푸근함이다. 전시는 내년 1월25일까지 열린다. 문의 (02)720―1020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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